책소개
신형철 문학평론가 해설 수록
“스스로 주체하기 어려워 보일 정도의 재능이 쏟아내는
야심과 진심으로 가득하다.”
출간과 동시에 뉴욕타임스 최고의 책으로 선정, 부커상, 여성소설상, 센터포픽션 신예작가상 등 쟁쟁한 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전 세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은 퍼트리샤 록우드의 소설 데뷔작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가 치열한 판권 경쟁을 거쳐 드디어 국내에 출간되었다. 2012년 시인으로 데뷔해 “우연히 시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다”고 평가받는 〈강간 농담〉(2013), 뉴욕타임스 북리뷰 최고의 책에 선정된 회고록 《사제 아빠》(2017) 등 장르를 넘나들며 내는 작품마다 독특함으로 이목을 끈 작가 퍼트리샤 록우드의 첫 소설 출간 소식에 많은 이의 눈길이 집중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스토너》 《듄》 시리즈 등 굵직한 문학작품을 다수 번역한 김승욱의 신뢰할 만한 언어와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해설이 이 소설의 현재 가치를 뒷받침한다.
“오늘날 디지털 문화를 가장 예리하게 조명하는 작가”(월스트리트저널), “온라인 세계의 낯섦과 인간 마음의 연약함을 예리하게 관찰하는 경이로운 작가”(록산 게이)라는 평가처럼, 퍼트리샤 록우드는 온라인 세상과 실제 현실의 대비를 예리한 필체로 유려하게 써내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작가다. 관찰과 은유로 가득한 이 소설은 트위터(X) 형식을 빌려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신형철 평론가가 짚었듯 “누가 봐도 내부자”인 록우드는 2011년 트위터에 입성하여 엉뚱하고 유머러스한 트윗으로 팬덤을 만든 장본인으로서, 이 소설이 이런 형태로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은 필연적인 결과다. 이 소설이 쉽게 읽히지 않는 이유이자 뜨거운 논쟁으로 떠오를 문제, 즉 형식과 주제를 어떻게 연결해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신형철 평론가는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 “이를 두고 파편적이고 단속斷續적이라고 해봤자 비판이 될 수도 없는 것은 그게 의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소셜 미디어 시대의 글쓰기 방식이 창작자들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 내용과 형식 두 측면 모두에서 제출된 하나의 답이다.” 우리가 이 소설을 집어 드는 건 조금은 파괴적이고 불손하며 지나치게 웃긴 ‘내부자’의 목소리가 다신 없을 방식으로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목차
1
2
감사의 말
해설 | 당신이 했군요 (신형철 문학평론가)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어떤 이들은 슬픔 속에 투명하고 사랑스럽게 새겨졌다
사랑, 언어, 인간에 대한 심오하고 현대적인 명상
소설은 크게 1, 2부로 나뉜다. 1부에서 ‘그녀’로 명명되는 인물의 등장을 알리는 첫 문장을 읽자마자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떠오른다. 록우드 사전에 평범한 문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인터넷에 접속했다’와 같은 문장은 아래의 문장으로 둔갑해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신형철 평론가의 말처럼, 이 “소설을 2024년에 한국어로 읽는 우리는 책을 펼치면 일단은 어리둥절한 상태가 된다.”
그녀가 포털을 열자 정신이 한참 달려 나와 그녀를 맞이했다. (12쪽)
저자는 소설 곳곳에 독자를 아리송하게 하는 대목들을 계속해서 심어둔다. 이 소설이 쓰일 무렵 트위터로 추정되는 포털에서 실제로 오간 트윗들이 별다른 설명 없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특히 1부는 전반적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그럼에도 따라 읽어야 할 서사는 분명히 존재한다. 주인공은 소셜 미디어에 올린 글(“개도 쌍둥이가 될 수 있나?”)로 포털에서 유명해진 인물로, 그 덕분에 세계 각지에서 이 시대의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정보의 여파에 대해 이야기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실제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기후 변화, 독재자의 부상, 인종 차별 등을 뒤로한 채 사람들은 인터넷 속에 숨는다. “전적으로 포털 안에서만 사는 삶을 선택”한 삶에 안주할 무렵, 어머니로부터 한 통의 문자가 도착한다. “문제가 생겼어. 얼마나 빨리 여기로 올 수 있니?”
“너는 우리를 가르치러 온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너에게 배웠어.”
어떤 일은 한 사람의 삶을 크게 바꾼다. 작가 스스로 자전적이라 밝힌 2부는 가족 내 발생한 비극을 맞닥뜨리며 현실을 살아가게 되는 이야기다. 세상에 태어날 준비를 하던 조카에게 문제가 생겼다. 다발성 신경섬유종증이라고 불리는 프로테우스 증후군. 2부를 여는 글은 그녀의 세계에 변화가 생겼음을 독자에게 인식시킨다.
그녀의 정신이 있는 곳에서 커서가 깜박거렸다. 그녀는 진실한 단어를 차례로 입력하고, 그것들을 포털에 올렸다. 그러자 갑자기 진실하지 않게 되었다. 적어도 그녀가 진실하게 만들 수 있었을 만큼 진실하지는 않았다. 픽션은 어디 있는가? 거리감, 각색, 강조, 비율은? 단어들은 다른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 단어들의 사소함을 삶의 거대함에 들이받을 때에만 진실하지 않게 되는 건가? (179~180쪽)
포털을 켜고 무언가를 입력해보려 하지만, 늘 써오던 것들이 ‘진실성’을 잃고 맥락은 사라진다. 동생의 배 속에 희귀한 병을 가진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을까. 괴상한 트윗으로 유명해진, “잘하는 것이 웃기는 것뿐”이며, 포털 사용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슬픔에 미쳐버린” 사람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때 단 하나다. 더 이상 포털에 아무것도 올리지 않는 것. 이 시점을 전환으로 그의 삶은 한 아이에게 온전히 바쳐진다.
“내가 그 애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어.” 그녀는 남편에게 설명하려고 했다. 최근 〈나이트라인〉에서 위험하다는 사실이 폭로된 그 98달러짜리 낡은 비행기를 타고 왜 자꾸 오하이오로 가느냐는 남편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1분의 의미가 그 애한테는 커. 우리한테 1분이 의미하는 것보다 더 크다고. 그 애가 앞으로 얼마나 살지는 모르지만, 내가 그 애한테 시간을 줄 수 있어. 나의 몇 분을 그 애한테 줄 수 있어.” 그러고는 거의 성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가 전에는 그 시간으로 뭘 했지?”(257~258쪽)
신형철 평론가는 묻는다. “이것은 슬픔이고 고달픔이며 무력함인가? 아니다.” 주인공은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아기에게 내어주고, 현실과 마주하며 살아가기 시작한다. 아기와 함께하는 “날것”의 느낌은 그녀로 하여금 “자기를 다 내어줄 만한 대상이 생기고서야 ‘자기’라는 게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며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찾아갈 수 있게 돕는다. 결국 “자신에게 자신을 (찾아) 주는 일”을 가능하게 한 아기는 6개월 하고도 하루를 살고 우리 곁을 떠난다.
“먼저 삶을 삶에 바치자고,
그럼으로써 서로 연결되자고.”
이 소설은 어떤 규정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농담으로 충격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록우드의 재능을 따라 읽다 보면, 실제의 삶보다 중요한 건 없다는 단순한 교훈을 향해 가는 단순하지 않은 여정을 걷고 있는 자신과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살아야 할 진짜 삶이 있다. 신형철 평론가는 이 소설에 대한 추천의 글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그는 계몽적인 연설이 아니라 아름다운 이야기를 통해 주장한다. 먼저 삶을 삶에 바치자고, 그럼으로써 서로 연결되자고 말이다. 스스로 주체하기 어려워 보일 정도의 재능이 쏟아내는 이 야심과 진심에 대해선 더 많은 분량의 글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해설에서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단 말이에요!”를 외치는 221쪽의 저자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의 감상을 보탠다. “당신이 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