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앨리 스미스는 진정으로 모던한 천재이다.” _알랭 드 보통
소설, 에세이, 비평이 마법처럼 결합된 이야기
앨리 스미스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로, 기존의 틀과 형식을 깬 작품에 수여하는 골드스미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강연 원고를 표방하고 있지만, 텍스트는 소설, 에세이, 비평의 형식을 넘나든다. 상실과 회복이라는 보편적인 주제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문학을 비롯한 예술사의 빛나는 대목들을 절묘하게 통합해놓았다.
이야기는 화자가 연인의 망령과 마주하면서 시작된다. 화자는 상실감과 혼란스러움 속에서 죽은 연인이 남긴 강의록을 뒤적인다. 시간, 형식, 경계, 제안 및 반영. 이들 네 개 주제에 대한 강의록은 예술과 그 너머에 관한 밀도 높은 생각들을 담고 있으며, 화자는 이것들과 함께 보통의 일상을 향해 서서히 나아간다.
주요 모티프를 제공한 찰스 디킨스는 물론, 발터 벤야민, 실비아 플라스, 에밀리 디킨슨, 히치콕, 버지니아 울프, 토베 얀손, 마거릿 애트우드 등 수많은 교차점과 평행선으로 텍스트가 빼곡하다. 모더니즘과 리얼리즘, 둘 사이의 새로운 균형점을 제시한다.
목차
도판
1장 시간에 관하여
2장 형식에 관하여
3장 경계에 관하여
4장 제안 및 반영에 관하여
자료 출처
옮긴이의 말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앨리 스미스는 진정으로 모던한
천재이다.”_알랭 드 보통
소설, 에세이, 비평이 마법처럼 결합된 이야기
앨리 스미스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작가로, 국내에 제법 여러 권의 책이 번역되어 있다. 계절 4부작부터, 《호텔 월드》, 《우연한 방문객》 등 꾸준히 소개되어왔다(2024년 7월 기준 장편소설 12편 가운데 9편이 한국어로 번역됨). 자국의 일부 언론에서는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기도 할 만큼 문학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수상 경력도 화려한 편이다. 한국 독자들에게 익숙한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네 번 올랐으며, 코스타상, 오웰상, 베일리스여성문학상 등을 받았다. 대영제국훈장도 수훈했으니 국민적인 지명도가 있음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이 책 《아트풀》은 앨리 스미스의 여섯 번째 작품으로 원서는 2012년에 발간되었다. 작가의 모더니즘 스타일과 예술론이 잘 드러나는 이 작품은 죽은 연인의 망령과 조우하고 그가 남긴 강의록을 뒤적이며 서서히 일상을 회복해나간다는 간단한 줄거리를 취한다. 모두 네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장의 키워드는 순서대로 시간, 형식, 경계, 제안 및 반영이다. 이것들을 작가의 예술론으로 읽을 수도 있고, 소설 이야기 그 자체로 흥미롭게 읽을 수도 있다. 이러한 균형감은 앨리 스미스를 새로운 모더니즘의 기수로 위치시킨다.
작품의 제목이자 이야기의 모티프가 되는 ‘아트풀’은 기본적으로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별명이다. 잭 도킨스 혹은 존 도킨스라는 인물은 소설에서 ‘아트풀 다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데, 국내 주요 번역본에서는 이를 ‘교묘한 미꾸라지’, ‘교활한 미꾸라지’, ‘꾀돌이 얌생이’ 등으로 옮기지만, 이 책에서는 해당 단어의 발음을 단순 한글 표기했다. 작가가 이 인물의 유연함, 의미의 미끄러짐이라는 특성에 주목해 《아트풀》의 주제의식을 투영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아트풀의 의미가 모호하게 사용됨으로써, 보다 폭넓은 해석의 공간이 열린다.
모더니즘 소설의 현재;
예술과 그 너머에 관한 네 번의 강의
앨리 스미스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모더니스트로 평가받는다. 따라서 모더니즘 소설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있으면, 《아트풀》을 포함한 그녀의 작품을 즐겁게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 모더니즘이 처음 나타난 것은 20세기 초이다. 그전까지 사실주의적 작품(리얼리즘)이 지배적이었는데, 이 경향의 작품들은 시간 순서에 의해 차곡차곡 서술되며, 앞뒤 맥락이 질서 있게 정리되어 있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사건들이 전개된다. 우리가 흔히 세계 명작 소설로 소비하는 19세기 작가들이 여기에 속하며, 조지 오웰이나 코난 도일, 요새로 치면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대중작가, 전독시 같은 웹소설 등도 이런 특징을 공유한다. 친숙하며 이해하기 쉽고 몇 가지 유형으로 스토리텔링 방식이 정형화되어 있다.
그런데 당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그때까지의 모든 방식에 일대 의문이 제기된다. 사람들은 문명의 가공할 파괴성에 큰 충격을 받았고, 다른 방향을 모색했다. 소설 영역도 마찬가지여서, 사실주의 작품이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등장한 모더니즘 소설은 시간 순서에 따른 서술보다는 공간적인 구성을 주로 사용하고, 객관적인 서술이 아닌 인물의 내면 서술에 초점을 맞추며, 흥미진진한 사건이나 줄거리보다 내적 경험이나 개성을 중요하게 여겼다. 앨리 스미스, 그리고 이 작품 《아트풀》은 바로 이러한 전통 아래 서 있다.
《아트풀》은 모더니즘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거기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다. 그것의 주요한 부분들은 대개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요약되는 특징들을 담고 있다. 먼저 형식의 경계가 중첩되거나 해체되어 있다. 작가는 이 소설의 첫머리에 아주 분명하게 이 책의 내용이 강연 기록임을 명시한다. 그런데 막상 본문으로 진입하자마자 소설이 되었다가, 다시 강연 기록인 듯 에세이인 듯 모호한 글이 제시되고, 작품 내내 이러한 서술이 번갈아가며 반복된다. 이렇게 경계의 중첩과 해체는 형식에 대한 해석, 혹은 음미를 불러일으키며 독특한 미감을 자아낸다.
또한 《아트풀》은 죽은 연인의 망령과 조우한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흐릿해진 상태에서 널찍한 사유의 공간이 마련되고, 작가는 이 넉넉한 영토를 화려한 상호텍스트성으로 수놓는다. 찰스 디킨스, 발터 벤야민, 실비아 플라스, 에밀리 디킨슨, 셰익스피어, 히치콕, 토베 얀손, 마거릿 애트우드 같은 친숙한 텍스트부터, 필립 라킨, 톰 건, 크리스티나 로세티, 엘리자베스 하드윅, 조지 매카이 브라운 등의 다소 생소한 텍스트까지 복잡다단하게 얽히고설킨다. 기존의 의미가 비틀리고 재해석되면서 사고가 속박과 구속에서 풀려나 다채로운 상징과 뉘앙스를 띠게 된다.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새로운 균형점을 제시하다
기성의 눈으로 보면, 모더니즘 계열의 소설은 어렵다. 그러나 앨리 스미스의 글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단적으로 20세기 초의 모더니스트인 에즈라 파운드나 제임스 조이스처럼 난해하지 않다. 그녀는 독자들과 멀어지게 만든 과거 모더니즘의 언어적 과잉에서 벗어나, 보다 현대적인 산뜻한 길을 가려 한다. ‘나’는 죽은 연인의 강의록을 뒤적이고, 알 수 없는 웅얼거림으로부터 의미를 읽어내려 하고, 그러나 결국에는, 아니 처음부터 리얼리즘의 걸작 《올리버 트위스트》를 맴돈다. 이는 마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새로운 균형점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렇다, 앨리 스미스는 오늘날의 모더니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