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시간과 공간의 규정을 넘어서는 새로운 실천,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는 ‘연결신체학’
정동(情動, affect)과 젠더의 연구방법을 결합하여 주체와 몸, 삶과 죽음, 질병, 장애, 소수자, 포스트휴먼 등에 대한 인문학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하는 젠더·어펙트 총서의 제4권 『연결신체학을 향하여』가 출간되었다. 『연결신체학을 향하여』에는 연결성을 재구축하는 연구 방법론을 제시하고, 그 위에서 벌어지는 실천 사례들과 ‘연결신체학’을 규정하는 새로운 지식을 제안하는 12편의 결과물이 수록되었다.
어펙트 연구는 이제 낯선 학문의 영역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인류학의 확대재생산을 위한 대안으로, 북미와 영국에서도 소수자 연구와 어펙트 연구를 결합하는 이론이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국내에서 어펙트 연구는 한국문학, 사회복지학, 미디어 연구, 사회학, 인류학, 역사학 등 다양한 분과학문 간의 공동 연구를 통해 대안적인 지식 체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이번 책 『연결신체학을 향하여』는 기존 분과학문을 갱신하며 새로운 분과학문의 모델을 만들고자 하는 연구의 방향을 충실하게 담아냈다. 각자의 입지에서 시작한 연구는 그 과정에서 정동을 발견하며 정동을 또 하나의 방법론으로 빚어간다. 각각의 글은 학문적 경계와 위계를 뛰어넘으며 연결되고, 새로운 실천의 대안을 제시한다.
목차
서문: 연결신체학을 향하여
1부 트랜지셔널 아시아의 정동 지리: 트랜스 퍼시픽에서 트랜스 아시아까지
젠더 · 어펙트 연구 방법론과 역사성 (권명아)
아이누의 히로인과 전쟁의 정동 (나이토 치즈코)
타이완 가자희와 한국 여성국극 속 과도기적 신체와 정동적 주체 (첸페이전)
2부 손수 장인들의 테크놀로지와 대안 정동: 해녀, K-팝, 맘카페
크래프트의 실천지리 또는 ‘해녀’와 ‘아마’의 정동지리 (권두현)
팬덤의 초국적 기억정치와 정동 (이지행)
연결된 엄마들, 확장된 목소리, 새로운 정치 주체의 탄생 (최서영, 최이숙)
3부 연결된 ‘과거’와 역사적 정동: 이야기, 종교, 미학의 정동 정치
어머니의 신체와 연결성 (강성숙)
일제하 일본인 사회사업과 조선인 (소현숙)
일본 내셔널리즘과 미와 멸망의 정동(情動) (이지현)
4부 정동적 정의와 존재론적 전회: 부정의에 맞서는 대안 이론과 실제
비접촉시대에 돌봄노동자의 삶과 노동의 위태로운 기술로서 정동적 부정의 (정종민)
나이 듦과 장애 (이화진)
가정폭력과 반려동물 학대의 문제 및 개입 (박언주, 김효정, 류다현)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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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출판사리뷰
아시아의 정동들의 고유한 궤적을 따라가며
비서구적 정동 지리의 가능성을 발견하다
1부 〈트랜지셔널 아시아의 정동 지리: 트랜스 퍼시픽에서 트랜스 아시아까지〉의 첫 번째 글 권명아의 「젠더 · 어펙트 연구 방법론과 역사성」에서는 특정 집단을 무감정하고 무감각한 존재로 만드는 ‘느낌의 생명정치’를 비판하며 정동 정치의 역사적 특성을 살핀다. 이는 어펙트 이론의 ‘보편적’ 적용이 아니라 상황적이고 맥락적인 어펙트 연구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이번 총서의 전체 기획과 부합하는 중요한 시도이다.
나이토 치즈코의 「아이누의 히로인과 전쟁의 정동」은 현대 일본의 내셔널리즘 속 보이지 않는 성폭력으로 인해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홋카이도 선주민족 ‘아이누’와 연결하여 살핀다. 이를 위해 러일전쟁 이후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아이누’에 대해 다룬 만화 〈골든 카무이〉를 가져와 그 속에 그려진 역사적 트라우마를 숨기는 사각지대에 대해 비판한다.
첸페이전의 「타이완 가자희와 한국 여성국극 속 과도기적 신체와 정동적 주체」는 한국 여성국극과 타이완 가자희(歌仔?)의 전통 연극에서 망각된 여성 동성 친밀성을 사회 · 정치 · 문화가 급격히 변화한 각국의 역사 속에서 다시 읽는다. 한국 여성국극과 타이완 가자희를 연결하는 이 글의 시도는 어펙트 연구가 곧 타이완과 한국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정동적 실천은 어떻게 세상을 빚어나가는가
2부 〈손수 장인들의 테크놀로지와 대안 정동: 해녀, K-팝, 맘카페〉에는 1부의 정동 지리 위에서 일어나는 실천 지리에 주목하는 글들을 모았다. 권두현의 「크래프트의 실천지리 또는 ‘해녀’와 ‘아마’의 정동지리」는 〈아마짱(あまちゃん)〉과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두 편의 드라마를 대상으로 감성주의적 생명정치와 크래프트의 정동정치의 역학관계를 살핀다. 이를 통해 ‘해녀’와 ‘아마’의 생명 또는 생존의 문제를 사로잡고 있는 ‘죽음정치’를 공감의 생명정치로 드러내는 실천에 주목함으로써 정동적 실천을 구체적인 삶으로 연결한다.
이지행의 「팬덤의 초국적 기억정치와 정동」는 2018년 11월 발생한 ‘BTS 원폭티셔츠’ 논란에 대한 팬 커뮤니티의 담론을 분석함으로써, 이 논란을 서로 다른 민족적 정체성을 가진 팬덤 공동체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 폭력에 대항하고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는 정치적, 문화적 실천을 작동하는 긍정적 사례로 바라본다. 더 나아가 아티스트의 영토적 정체성이 ‘역전된 문화제국주의’가 아닌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최서영과 최이숙이 함께 쓴 「연결된 엄마들, 확장된 목소리, 새로운 정치 주체의 탄생」은 2017년 창립된 비영리민간단체 ‘정치하는엄마들’에 주목한다. ‘엄마’로서 겪는 불합리와 모순을 개선하기 위한 이들의 활동은 ‘나’, ‘나의 아이’의 문제로 치부되던 것을 ‘우리의 문제’로 함께 고민하게 한다. 우리 모두가 돌봄의 책임자임을 인식하고 모두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질문하고 논의한다는 점에서 돌봄 민주주의 사회를 향한 새로운 정치적 실천이 실행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역사 속 현장에서 발견한 정동적 이행과 존재들
3부 〈연결된 ‘과거’와 역사적 정동: 이야기, 종교, 미학의 정동 정치〉에 모은 글들에서는 ‘현재’를 역사적 정동의 ‘현장’으로 파악하면서 시간을 공간화하는 작업을 한다. 강성숙은 「어머니의 신체와 연결성」에서 구비설화를 통해 어머니의 신체가 형상화되는 과정 속에 어머니의 신체에 대한 인식도 함께 만들어지고 있음을 분석한다.
「일제하 일본인 사회사업과 조선인」에서 소현숙은 화광교원(和光敎園)이 일본 제국의 지원 아래 식민통치에 이바지할 목적으로 세워졌지만, 이 공간에서 여러 신체가 연결됨에 따라 다른 정동이 분출하는 현장이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한국에 거주했던 일본인의 종교적 삶과 조선 정착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일본 내셔널리즘과 미와 멸망의 정동(情動)」에서 이지현은 고전문학 『헤이케모노가타리(平家物語)』, 영화 〈바람이 분다(風立ちぬ)〉, TV 애니메이션 〈아니메 헤이케모노가타리〉에 주목하여 일본 대중문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비극적 죽음을 통한 영웅 만들기 서사가 현재까지 유효한 ‘멸망의 정동’으로 규정한다.
가정과 사회에서 일어나는 부정의, 차별, 학대에 맞서는
정동적 정의의 실천
4부 〈정동적 정의와 존재론적 전회: 부정의에 맞서는 대안 이론과 실제〉는 ‘정동적 부정의’의 사례들을 제시하고, 이에 맞서는 실천을 매개하는 글들을 모았다. 「비접촉시대에 돌봄노동자의 삶과 노동의 위태로운 기술로서 정동적 부정의」에서 정종민은 팬데믹 위기에서 국가로부터 호명되는 영웅의 모습과 돌봄노동자들의 현실이 불일치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 글에서는 돌봄노동자들의 지난했던 삶과 노동을 드러냄으로써 돌봄노동자가 위태로운 삶을 삶의 기술이자 자원으로서 전환시켰음을 확인한다.
이화진은 「나이 듦과 장애」에서 TV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알츠하이머 환자 ‘혜자’의 몸의 시간과 정체성에 주목하여 존재론적 조건으로서의 나이듦을 젊고 건강한 신체와의 대비 아래 노년의 신체가 부정적으로 간주되는 상황을 비판한다. 이러한 관점은 몸을 과거와 연결된 현장으로 바라보는 관점으로, 앞선 글들이 제시한 문제와 연결된다.
총서의 마지막 글 「가정폭력과 반려동물 학대의 문제 및 개입」에서 박언주, 김효정, 류다현은 가정폭력과 반려동물 학대의 뒤얽힘에 주목한다. 두 종류의 폭력이 모두 가부장제에 기반해 여성과 동물에 대한 통제와 억압을 목적으로 한다는 사실을 살핌으로써 종들의 경계를 뛰어넘는 통합적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가부장제의 폭력과 학대를 중단시킬 수 있는 실천적이고 해방적인 가능성을 찾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