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옛집을 고쳐 작은 책방을 열다!
길담서원은 2008년부터 서촌에 터를 잡고 강의와 공부 모임, 음악회, 전시 등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책방이다. 나날이 인상되는 월세와 대표의 건강상의 문제로 문을 닫게 되어 책방지기로 일했던 ‘여름나무’와 ‘베짱이뽀’는 이전하여 이어가기로 했다. 대지에 발을 딛고 살고 싶었던 두 사람은 골목길이 살아있고 제민천이 흐르며 무령왕이 잠들어있는 백제의 고도 공주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몸과 마음의 균형을 이루며 살겠다는 다짐을 실천하고자 집수리를 직접 하기로 한다. 멋모르고 뛰어들었다가 1년여를 꼼짝없이 중노동에 시달리며 벽과 천장을 허물고 먼지와 싸운 우여곡절의 시간을 기록해나간다. 어렵고 고된 가운데서도 재밌었던 집수리 보고서『작은 책방 집수리』는 이렇게 태어났다.
목차
여는 글
어쩌다 우연히
여름나무와 베짱이뽀의 작은 책방 집수리
1장 인연, 봉황동 290번지
봉황동 290번지
버선 모양 터에 놓인 이상한 집
좋은 대지와 마당 정원의 변화
파파고는 읽을 수 없는 등기권리증
이 집의 신들에게 밤 막걸리를 올렸다
집수리가 시작되었다
카프카의 안전모와 집을 짓는 재료들
겁이 나서 견적을 의뢰했다
2장 먼지의 시간
철거가 파괴라면 해체는 사랑이다
솜털처럼 가벼워진 고양이
먼지폭탄이 터졌다
쉽게 할 일을 어렵게 하고 사고 치며 배우는 우리
왜 공부를 안 해?
전기가 들어오자 노동 시간이 길어졌다
여름나무의 고집
무릎은 굽히고 팔은 펴고
계단보강
갈고 닦고 칠하고
배윤슬 씨, 도와줘요!
3장 멈췄던 게 돌아가고 미웠던 게 예뻐지고
조적과 미장, 죽을 것만 같다
한 뼘 창을 내다
다시 쓰인 나무들
춥고 거칠어지면 무뎌지는 법
화장실을 시공할 줄 알면 집을 지을 수 있다
배관공사와 타인의 시선
‘그럼 그렇지! 한 번에 되면 이상하지!’
미심쩍었으나 그냥 넘긴 곳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콘센트타이머
그런데 사무실이 없다
4장 집수리 몸수리
두 번째 봄
집수리 몸수리
가만히 짐작하면 알게 된다
집수리와 유튜브 그리고 나의 욕망
일하고 싶지 않아
사람은 9L의 먼지만 먹으면 되는데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
마감을 해야 마감이 된다
마지막 저항
내 몸에도 ‘뜸씨’가 살아있을까?
5장 쉼의 옹호
아침 산이 문턱까지 다가와있었다
어떤 책방을 열어가야 할까?
팥과 귀리 그리고 전호
마음에 걸리는 그것
슈베르트와 케테 콜비츠
선생님들의 우정
조금씩 변하는 집
공태수 씨 이야기
삶의 방식이 비슷한 이웃 사람
힘들 거예요. 그래도 잘해보세요
쉬어야 낫는다
벽돌을 쌓으며
19세기 앤이 좋아
닫는 글
언니들이 곁에 있었다
집수리를 하면서 곁에 둔 책들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아무것도 몰랐던 우리
몸도 마음도 탈탈 털린 집수리 몸수리
러셀, 마르크스, 니체, 발터 벤야민 등의 책 속에서 헤매던 저자들은 빠루를 들고 벽과 천장과 씨름을 해야 했고 책을 쌓아놓고 토론이나 글쓰기를 하는 대신 벽돌을 쌓고 미장을 해야 했다. “노동은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라 이루어지는 창조 행위이다.”라고 했던 윌리엄 모리스의 말로 분위기를 잡으며 산책하고 독서하며 집수리현장을 오가던 일상은 변해갔다. 일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산책은 뜸해지고 책과도 멀어졌다. 애초에는 하다가 안 되면 업체에 맡길 생각이었으나 맡겠다는 업체가 없었고, 그 순간부터 집수리는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책방을 오픈하겠다는 일념으로 천장을 뜯고 수평 몰탈을 치고 에폭시를 바르고 페인트를 칠하고 도배를 하고 루버를 치며 막노동의 세계로 들어갔다.
카프카도 기겁했을 천장 해체 작업
공사 현장에서 인부들이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안전모는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의 발명품이다. 저자들은 안전모를 쓰며 타인의 죽음을 마음에 걸려 하던 카프카와 자신이 연결되어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안전모는 천장을 뜯을 때 떨어지는 부산물로부터 작업자를 지켜준다. 그런데 이번에는 카프카의 배려가 무색해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천장을 뜯어내자 역겨운 냄새와 함께 눈앞에 고양이 사체가 덮쳐왔고 이들은 패닉에 빠지고 말았다. 천장을 해체하는 동안 연이어 죽은 쥐와 고양이의 흔적이 발견되었고 사체 썩는 냄새도 계속되었다. 결국 죽은 동물들의 사체를 묻어주고서야 그 충격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바닥공사
몸의 상태와 노동 강도에 따라 하루에 3~4시간씩 작업하던 두 사람이 바닥공사를 할 때는 2~3시간 간격으로 건조시키는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프라이머, 자동 수평 몰탈, 에폭시를 지속적으로 쳐야 하는 일이라서 막노동의 속성을 체감한다. 가장 괴로웠던 순간은 천장 해체 작업이었지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수평 몰탈과 에폭시를 칠 때였다고 털어놓는다. 석장리박물관 입구에 지천으로 떨어진 산딸나무 열매를 주우며 채집인으로 살고 싶다고 읊조리는 대목에선 힘든 일과를 마친 고됨이 느껴진다. 전에 없던 육체노동은 힘든 만큼 많은 깨우침을 남겼다. 체력의 한계치까지 무리하면 몸은 반드시 탈이 나고 그 이상의 회복 시간을 요구한다. 몸은 한 템포 늦게 반응하기 때문에 한계치에 닿기 전에 멈추는 절제가 필요하다. 집수리는 많은 힘이 소모되는 일이므로 체력을 기르는 것부터가 집수리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집수리와 몸수리의 공통점은?
철거 대신 해체와 수리
철거는 백지상태로 돌리고 아예 새로 짓는 것이지만 해체는 기존의 형체와 질서를 유지하면서 새롭게 재구성하는 일이다. 한뼘미술관을 수리할 때는 기존의 큰 창을 쪼개 3개의 작은 창으로 만들기로 했는데 창을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바깥 풍경을 즐기기 위함이다. 그러나 각재와 합판을 덧대어 창 일부를 가리고 작은 창을 하나 완성하자 체력이 고갈되고 하루가 저문다. 결국 1개의 작은 창을 내고는 ‘나중에’하기로 미룬다. 기존에 형성된 구조를 고쳐 쓰는 일은 기술을 요하는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아픈 몸을 치료하는 과정도 수리와 비슷하다. 집수리 중에 치과에 가서 임플란트 치료를 마치고 나머지 불편한 곳도 전부 치료해 끝내고 싶다고 말하자 의사는 말한다. ‘50년을 쓴 거예요. 어느 물건이든 50년을 쓰면 삭고 닳아요. 살살 달래고 치료하고 보완하면서 갈 수밖에 없어요.’ 노화하는 우리 몸도 수리의 과정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책이 이어준 인연들
길고 고된 집수리의 여정에서 힘이 되고 쉼표가 되어준 것은 사람과 자연이었다. 집수리에 지친 몸과 마음을 풀어야 할 때 동무들이 있는 원주, 제주도, 청송으로 달렸다. 마곡사, 갑사, 송광사 등의 사찰에 머물고 함양의 남계서원과 대구의 도동서원을 둘러보며 길담서원의 지향점을 고민했다. 집수리 여정에서 조언을 해주고 필요한 장비를 실어다주고 난관에 부딪혔을 때 해결해준 분들도 여럿 있었다. 남과 다른 삶을 살겠다고 하자 어깨를 툭툭 치며 ‘힘들 거예요. 그래도 잘해보세요.’라고 말해주던 대안학교 학생이 있었고 염려와 격려로 마음을 써주던 ‘언니들’도 있었다. 그분들의 응원에 힘입어 두더지 굴 같던 별채를 수리하고, 2022년 2월 25일 길담서원을 열었다.
책방이 책의 집이라면 우리의 몸은 정신의 집이다. 고된 집수리 여정에 쉼표를 찍으며 새 길을 열어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책방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 프롤로그
이 책은 조카가 태어나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상황에서 썼다. 우리는 서울에서 공주시로 이사를 했고 48년 된 집을 해체하고 수리하면서 만남과 이별, 생성과 소멸을 생각했다. 아이가 자라는 속도로 부모님의 건강이 저물어갔다. 기쁨과 허무함, 몸의 소중함을 직면하고 갈팡하고 질팡하면서도 늘 중심을 잡아준 것은 역지사지易地思之하고 송무백열松茂栢悅하는 동무들의 마음이었다. ‘포즈’가 아니라 진정한 마음이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은 질투를 당연한 것처럼 여기게 했다. 하지만 이런 심성 반대편엔 친구가 잘되기를 응원하고 지원하는 마음도 있었다. 질투는 미워함의 시작이자 싸움의 근원이고 자신을 괴롭히는 씨앗이지만 타자의 입장을 헤아리고 벗이 잘됨을 기뻐하는 마음은 온기를 더하고 힘을 주는 법이다.
셀 수 없이 흔들려 균형을 잡으려고 애쓸 때, 피곤하고 지쳐서 쉬고 싶을 때, 그때 만났던 동무들과 선생님들, 함께했던 이웃들, 찾아갔던 장소도 이야기에 담았다. 따라서 집수리 기간은 단순히 집을 고치는 시간이었다기보다는 우정에 관하여 생각하고 몸 건강을 위한 자세를 단단히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길담서원을 저만치 떨어져서 바라보며 ‘느리게 제멋대로’ 고쳐나갔다. 여기서 ‘느리게 제멋대로’는 선택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허술한 몸 상태와 어설프게 흉내나 낼 수밖에 없는 기술의 한계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집수리를 하면서 우리는 몸으로 산다는 사실을 직시했고 몸 건강이 나의 일상을 어떻게 좌우하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집수리에 관한 책이라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것, 관계 맺게 된 것, 집수리를 통해서 본 삶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 ‘여는 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