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시를 사는 시인’ 고성만 시인이
펼치는 ‘만들어지는 시’의 진경
고성만 시인의 신작 시집 『파씨 있어요?』가 시인의일요일에서 출간되었다. 등단 26년 동안 8권의 시집(시조집 1권 포함)을 출간하면서도 태작 없이 매번 시적 밀도를 유지하고 사유의 깊이를 더하는 자세는, 30여 년 동안 교육 현장에서 종사해 온 삶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맡은 차창룡 시인은 고성만 시인을 일컬어 ‘시를 사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대학 문학동아리에서 만났던 선배, 고성만 시인은 시는 ‘기성 시인들을 대충 흉내 내는 것’이 아니며, ‘만들어 내는 것’이어서는 안 되고 삶을 통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어야 한다는 그의 논리는 명쾌하고도 자신감 넘쳤다고 기억하고 있다.
시골에서 나서 도시로 나와 살아온 또래의 그들처럼 고성만 시인이 지닌 꾸준함과 성실함은, 삶에서뿐만이 아니라 시에서도 투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일상에서 마주한 슬픔과 생채기를 시적 자양분으로 삼아 모순된 정서와 왜곡된 자연 질서, 삶의 순리를 회복하고자 한다. 이것은 어떤 사명이나 시대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저 그의 삶과 시가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면서 만들어지는 진경이다.
이전 시집을 통해, 살아가면서 인간이 느끼고 맞닿아 있는 다양하고 원초적인 슬픔을 단단하고 아름다운 무늬로 표현해내고 있다는 평을 받았던 고성만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는 한층 더 따뜻하고 감동적인 시편들을 선보인다. 이 따뜻함은 메시지가 아니라 간략한 상황이나 풍경, 이미지만으로 그려낸다. 독자 스스로가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시인은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소통 부재의 건조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의미를 헤아리고 짐작해 보는 새로운 의사소통의 방식을 추천한다. 독자의 몫을 철저하게 남겨둔다. 여백이 많다고 할 수도 있고, 시의 숨구멍이 많다고 할 수도 있다.
목차
1부 우리 동네 날씨
갑자기 비를 만났어 / 개망초는 피어 흔들리고 / 우리 동네 날씨 / 몬순 여자 눈사람 / 실어증 / 천사들 다 어디 갔지 / 이웃을 기억하는 방식 / 소녀를 숭배하다 / 담양 / 하늘을 찾아서 / 데이지원룸 301호 / 죽은 새의 눈을 보다 / 6월에 쓰는 편지
2부 상담시간
아름다운 지옥 / 봄 / 숲의 기분을 느껴 보세요 - 상담시간·1 / 어쩌다 이렇게 - 상담시간·2 / 참말로 징하고만 - 상담시간·3 / 옛날 여자 / 폭설 / 변산 바닷가에서 / 패총이 있는 마을 / 금계국 / 마리우폴 / 그루밍 / 제2근린공원 / 대결 60
3부 꽃씨 여인숙
씨앗 파는 남자 / 씨앗 / 시집 발간 축하 모임 / 갖고 싶은, 가질 수 없는 / 옛집 마당은 하얗고 / 모계 /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읽다 / 발푸르기스의 푸른 밤 / 갈라파고스로 간 사람 / 꽃씨 여인숙 / 엘리베이터 / 불꽃놀이 / 설도에서 / 아파트 / 마다가스카르
4부 나는 저녁연기를 사랑했네
향기는 이별을 꿈꾼다 / 목포 내항에서 / 목공소 / 봄을 개봉하다 / 이번 생은 흰빛인가 / 학저수지에 가자 / 나는 저녁연기를 사랑했네 / 벙어리장갑 / 양림동 / 강물에 띄운 편지 / 구례발 부산행 영화여객을 타고 / 햇살수집가 / 꽃밭 일기
해설
평상심(平常心)이 시(詩)다 | 차창룡(시인·문학평론가)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대수롭지 않은 듯 이야기하지만,
우주로 달려가는 상상력, 생의 의미를 묻는 화두들
고성만 시인의 이번 시집은 일상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경험들을 대수롭지 않은 듯이 이야기하지만, 그 안에는 산 넘어 바다 건너 우주로 달려가는 상상력이 있고, 생의 의미를 묻는 다양한 화두가 살고 있는데, 그것들이 통일된 의미로 모아지기보다는 의문이 분화되는 양상으로 던져진다. 도대체 무슨 뜻이지? 곱씹어 보는 데 이 시집의 묘미가 있다. 그 의미는 「갖고 싶은, 가질 수 없는」 것이어서 끝내 의미를 찾을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 자체가 곧 시를 즐기는 것이다.
나는 고성만 시인의 새 시집을 읽고 ‘가상의 고성만 시인’에게 물었다.
“시란 무엇입니까?”
“평상심이 곧 시입니다.”
이 결론은 비약일 수 있겠다. 그럼에도 나는 고성만 시인의 이번 시집은 평상심시시(平常心是詩)를 시도한 시라고 감히 말한다. 여기서 평상심이란 시를 위해 조작된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마음 자체이다. 이 태도로 시작에 임한다면, 시를 쓰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조작되지 않는 시심(詩心)을 받아 적는 것 자체가 시이기 때문에, 시심이 읽어 주는 시를 그대로 받아 적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고 시가 자동으로 생산되는 것이 아닌 것은 우리의 마음이 이미 조작에 길들여져 있어서, 조작된 마음을 덜어 내는 것이 필요한 작업일 수 있다. 문제는 조작된 마음을 덜어 내는 것 또한 조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를 해소하는 방법이 곧 ‘시를 사는 것’이다.
고성만 시인이 많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이유를 나는 그가 ‘평상심이 곧 시’라는 마음으로 ‘시를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일들이 그에게는 중요한 시적 모티프가 되고, 스쳐 지나갈 이미지들이 그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히며, 웃어넘길 일이건 통곡할 일이건 넘겨짚을 일이건 그에게는 잘 풀리지 않는 화두가 되어, 이것들이 종합적으로 고성만표 시가 된다. 그리하여 나는 이번 시집에 이르러 고성만 특유의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고성만표 시’가 완성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시인의 말
초등학교 4학년 때쯤
백일장 대회에 나가 난생처음
상을 받았다. 부안군 장원이었다.
학교에서는 명예를 드높였으니
부상으로 ‘송아지 낳을 소’를 준다 했는데
아버지는 소 키우기가 번거롭다는 이유로 거절하셨다.
그때 썼던 글짓기의 주제가 아마
‘먼 곳’이었던 것 같다.
그 후 나는 자주 먼 곳으로 갔다.
몸은 여기 매어 있지만
먼, 그곳으로 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는 꿈을 꾸기도 한다.
- 2024년 봄
연제 호숫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