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과거의 진실과 마주한 조선인 출신 일본 순사의 운명을 건 선택!
만주와 연해주를 무대로 펼쳐지는 숨막히는 스릴과 모험의 대서사시
나라 잃은 치욕,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
과거의 아픔을 잊는 자에게 미래는 없다!
일제의 형사에서 조선 독립군으로 다시 태어난
한 청년의 삶과 사랑, 그리고 조국을 위한 서사
소설 『아버지의 깃발』은 깊은 산골에서 사냥을 하며 생활하던 순진한 청년이 호랑이 출몰을 인연으로 조선 총독부 2인자를 만나 이름도 『일본고유종인 삼나무가 되어 태양을 향해 곧게 뻗으라』는 의미의 스기야마 나오키(杉山直樹)로 고치고 평소 동경하던 일본 순사가 되지만, 만주에서 생활하는 동안 정체성에 눈을 뜨면서 겪는 내적 갈등과 마침내 독립군으로 변모하는 과정, 만주에서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는 모험과 스릴, 불타는 애국심을 그리고 있다. 또한, 주인공 개동이의 아버지를 통해 동학농민혁명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갑오 농민혁명전쟁의 최후 결전장, 홍천 자작고개전투의 모습을 실증 자료를 바탕으로 그들의 영웅적 활동과 순국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주인공 개동이 [일본명 스기야마 나오키(杉山直樹)]의 아버지는 동학농민혁명군으로 백성이 주인이 되는 새 세상을 꿈꾸며 은밀하게 활동한다. 개동이는 어려서는 그런 아버지를 잘 알지 못했고, 우연한 기회에 아버지의 창고에서 동학농민군의 꿈이 깃든 깃발을 발견하고는 충격을 받는다. 일본 제국주의 형사(순사)가 돼 있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진정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서서히 변해 간다. 일제의 악행과 중국 여러 지역에 흩어져 힘들게 살아가는 동포들 처참한 삶, 그리고 독립군의 활약상을 목도하면서 독립군 부대원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된다.
소설은 근본적으로 허구를 바탕으로 하지만 한편으론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가슴 뛰게 만드는 독립군들의 활동과 저항정신, 동포애 등이 장기간에 걸친 작가의 자료조사 덕분인 듯 사실성 있게 펼쳐진다. 항일투쟁을 하는 독립군들의 삶과 행적을 정밀한 취재와 상상력을 통해 카메라를 들이대듯 쫓아가며 세밀하게 복원한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독립지사들의 애국애족 정신 함양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의 문제를 에둘러 이야기하고 있다. 힘이 없어 나라를 잃은 게 지난 일이지만 그것은 단순히 과거가 아니고 현재이며 미래일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소설 첫 부분 ‘액자 시(詩)’에서 ‘어떻게 되찾은 나라인가. 강토는 강탈당했으나 얼은 도도히 살아 있음에 허기지고 외롭고 두려운 곳에서도 상상에서 신념으로 투쟁으로 임들 계셨기에 오늘이 있지 아니한가.’라고 일갈한다.
일제강점기는 우리 근현대사의 질곡이며 비극이다. 불우했던 시대의 한계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살다 간 주인공 개동이에 대해 우리는 충분히 감동과 연민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사랑은 피어나고 운명처럼 휘말린 이념과 인간적인 고뇌, 조국 독립이라는 큰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아버지의 깃발』은 전투와 음모, 일제의 잔악무도함을 고발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마침내 소설을 손에서 내려놓는 순간 우리는 한 사람의 애국자, 아니 한 사람의 신(新)독립군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듯하다.
[작가의 말] 중에서
요즈음 일본 제국주의 식민 지배에 관해 ‘과거사 청산’이니, ‘친일’이니 ‘밀정’이니 하는 말들로 언론을 비롯하여 나라 안팎이 시끌벅적하다. 이런 말을 들을 때 필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두 개의 문장이 있다. 하나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님의 유명한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에서 가장 큰 교훈은 인간이 역사를 통해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다.”라는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 교수의 말씀이다.
주지하는 것처럼 단재 선생님께서는 일제의 침략에 맞서 혹독한 시련을 겪으며 국권과 정체성, 자아와 자존을 수호하기 위해 불꽃 같은 인생을 사셨다. 이 문장이 비록 짧지만, 죽음의 위기를 넘나들며 침략자의 압제와 폭력에 맞서 온몸으로 싸운 생생한 체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므로 가슴에 울리는 반향이 클 수밖에 없다.
선생님께서는 민족자존 수호를 위한 언론인으로, 배달민족의 고대사 규명을 위한 역사학자(조선 상고사, 강역고 등)로, 현실 인식에 기반한 비타협 무장투쟁의 독립운동가로 한시도 자신을 돌봄이 없는 활동을 하시다가 가석방 제의마저 거절하고 고문 후유증과 영양실조, 동상 등이 겹쳐 향년 57세로 뤼순 감옥에서 지키는 이 없이 외롭게 순국하셨다.
스페인 태생의 철학자이며 시인인 조지 산타야나 교수가 한 이 말씀의 본래 취지는 ‘진보의 발전’에 관한 것이라 하더라도 문장 그대로 해석하고자 하는 이유는 지나온 우리 역사에 투영된 바로 지금의 우리들 모습이 이와 같기 때문이다.
고래로부터 일본 해적들의 침입으로 입은 수많은 피해는 차치하고라도, 불과 3백 년 전에 있었던 임진왜란의 참혹한 7년 전쟁을 뼈아프게 경험한 민족이 또다시 같은 자들로부터 같은 침략을 받아 급기야는 나라를 점령 당했으니 단재 선생님의 말씀은 우리 민족에게 하시는 불호령인 셈이고, 조지 산타야나 교수의 말씀은 우리의 어리석음을 지적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일제가 쫓겨간 지 80년에 이르는 지금까지도 과거사 문제나 반일과 친일이 화두가 되어 국론이 분열되고 민족간에 갈등이 발생하는가. 가해자인 일본은 우리에게 말장난이나 하면서 전 국민이 하나 되어 머리띠를 두르고 제 나라 잇속 챙기기에 급급한데 피해자인 우리 가운데는 아직도 친일파의 무리가 알에서 나온 독사의 무리처럼 번성하고 있고, 현대에도 밀정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자다가 한밤중에 경기(驚氣)할 일이고, 밥 먹다가 폭소를 터뜨릴 일이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성서를 제외하고 이스라엘 민족에 배신자나 밀정이 있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