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의 증인이 되어주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타인의 세계를 끌어안으려는 전력 질주
조우리 작가의 짧은 소설
여성, 퀴어, 노동을 향한 관심으로 작품 세계를 다져온 조우리 작가의 짧은 소설집 『디카페인 커피와 무알코올 맥주』가 출간되었다. 대산대학문학상 수상 당시 “글쓰기를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쓴 소설이 이런 것이겠지, 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담담하고 여운이 오래 남는, 놀라울 정도로 매끄러운 소설”이라는 평을 이끌어낸 조우리 작가는 『디카페인 커피와 무알코올 맥주』에서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 속 은연히 존재하는 희망을 담는다. 마음산책 짧은 소설 시리즈의 스물한 번째 책인 『디카페인 커피와 무알코올 맥주』에는 열한 편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일상의 반짝이는 조각을 채집해 색연필의 따뜻한 질감으로 옮기는 이영채 그림 작가가 매 작품마다 그림으로 함께했다.
친구의 주선으로 전혀 다른 취향의 상대와 하오의 시간을 보내는 서라와 미도(「디카페인 커피와 무알코올 맥주」), 왠지 우울해 보이는 인간 지혜를 행복하게 할 방법을 고민하는 고양이 타로(「타로의 지혜」), 형편없어진 구내식당 음식의 맛을 되찾으려다 뜻밖의 문제를 마주하는 효정(「점심시간의 혁명」), 떠난 선배의 비밀을 지키며 그의 마음을 가늠하는 유정(「마담 G의 별자리 운세」) 등, 열한 편의 이야기에는 타인의 세계를 향해 선명히 초점을 맞추는 시선들이 가득하다. 한순간도 한눈팔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는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상히 흐르는 일상에서 다정함과 사랑이 어떻게 기적이 될 수 있는지 느껴질 것이다.
목차
작가의 말
이 책을 펼치면
샴푸의 요정
양 치과의원의 비밀
빅토리아 케이크
디카페인 커피와 무알코올 맥주
메타버스 학교에 간 스파이
타로의 지혜
마담 G의 별자리 운세
점심시간의 혁명
밀크드림
사랑의 탄생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도서관에 갈 때마다 그 책들이 여전히 그대로,
잘못된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는 것을 보면 어쩐지 안심이 됐다”
제자리가 아닌 곳에서 살아가는 느낌
『디카페인 커피와 무알코올 맥주』에서 조우리 작가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안착하지 못하는 감각을 어루만진다. 「이 책을 펼치면」의 ‘너’는 도서관의 고요가 외부의 소란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준다고 여겨왔고, 「빅토리아 케이크」의 ‘나’는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엄마에게 털어놓는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힌다고 말한다. 열한 편의 짧은 소설은 아주 범상한 순간에, 아주 예사로운 일처럼 ‘나다움’을 숨기길 강요받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엄마,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해. 해법이 뭐야. 당장 전화를 걸어서 매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엄마에게 당신이 딸의 절친한 친구로 알고 있는 승아는 딸의 연애 상대이며, 예전에 자주 어울리며 엄마에게도 꽤 살갑게 굴었던 친한 언니가 딸의 이전 연애 상대라는 것을…… 설명하는 상상만으로도 숨이 턱 막혔다. 무엇보다 엄마는 지금 태국에 있었다. 계 모임 친구들과 패키지여행을 간 지 이틀째였다. 고대하던 ‘왓 포 와불’을 보고 있을 엄마에게 이런 식으로 커밍아웃 할 수는 없었다.
_「빅토리아 케이크」에서, 74쪽
“모든 사람이 바로 그 자리에
그 사람으로 태어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날 이해하는 한 사람만으로
모든 게 괜찮아지는 마음에 대하여
소설 속 인물들은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기보다 타인의 세계로 뻗어나가길 선택한다. “지금의 네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너를 전부” 이해하기 위해 상대가 통과해온 시간과 마음을 헤아리고(「이 책을 펼치면」) 타인을 위해 “자신의 에너지가 향해야 할 곳”을 결정하는(「점심시간의 혁명」) 이들은 결연하고 단단하다.
이들이 향하는 곳은 나를 이해해주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한 사람의 곁이다. 『디카페인 커피와 무알코올 맥주』는 단 한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쌓여 더 넓은 세상을 온기로 물들이고 마는 지순한 믿음을 펼쳐놓는다. 열한 편의 짧은 소설에 응축된 다양한 형태의 사랑은 우리의 시선이 닿지 못했던 삶의 구석구석을 비춰 위로와 희망을 전해줄 것이다.
세상에는 분명한 사실인데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재차 확인하고서도 의심하고, 다시금 시험하기를 반복하는 사람이 있다고. 너는 말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대답했지. 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분명한 것이라도 간절히 믿으려는 사람이 있다고. 그 믿음의 시도만이 진실이리라는 걸 알면서도.
_「이 책을 펼치면」에서, 18쪽
주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과 모여 있다는 건 신기하고, 벅찬 일이었다. 지금이라면, 현정에게 다가가 인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야, 주영이야. 기억해? 그렇게 물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안해, 약속 못 지켜서. 정말 미안했어. 그런 말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_「밀크드림」에서, 199~200쪽
작가의 말에서
계속, 작별하는 이야기를 썼구나. 소설을 모아놓고서야 알았다. 잘 작별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소설 바깥에서야 하는 생각이다. 쓰면서는 몰랐다. 쓰고 나서도 몰랐다. 책이 되려고 하니 알겠다. 책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