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한성 시인의 작품을 대하면 뉴 미디어 시대에 있어서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해답을 듣는다. 현대시가 감히 이루어내지 못한 긴장과 절제의 미학 속에서 당 시대의 음울한 현실인식을 풀어가는 기법과 삶의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시인의 고향, 장흥군 용산면 어산리, 어린 시절 어머니 그리움에 대한 투사가 엄청난 시적 영감을 발휘한다. 연작 『전각』 『장흥댐』 『빈집』 『어머니의 말』 등 그의 작품은 어떤 잣대나 기준틀을 제시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패거리 문학이나 대량 생산되는 삼류시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현대시조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그 전형을 제시한다.
그의 시가 보여주고 있는 또 하나의 장점은 현대시조의 다양한 시적 대상과 주제 영역이 어느 한 부분에 머무르지 않고 폭넓게 확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많은 대상의 깊이 있는 통합과 사유를 통한 시적 언어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은 사물에 대한 뛰어난 감성과 관찰력이다. 또한 그것을 시적 언어로 간명하게 변환시키는 능력의 탁월함 때문이다.
강인한 시인은 시평 ‘조형미와 현실 인식의 치열성’에서 그의 작품 특성은 “적절한 노출의 타이밍과 전체로부터 의미 있는 부분만을 끄집어내어 결합하는 주제적 집중은 바로 시인의 시정신에 다름 아니다. 이한성의 시들이 포착하는 것은 그러한 조형의 세계이다. 그러나 이렇게만 말하기엔 충분치 않다. 그의 시가 본질적 질료로서 다루고 있는 언어적 특징이 또한 가벼이 볼 수 없는 성질을 띠고 있는 까닭이다. 그가 사용하는 언어는 어떤 경우에서건 가식이 없는 질박한 육성으로 나타남을 볼 수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 지문이 없다
판재, 서각 속에
경계를 걷다
응시
똥밭
쥐젖
지문이 없다
한눈에 반하다
아프리카에는 숨바꼭질이 없다
우리 집에는 새끼 낙타가 살고 있다
선을 넘다
시의 감옥
무료한 날의 풍경
물의 눈
신가동, 재계발
상에 관하여
제2부 | 여자만 여자
어머니의 말씀
어머니의 칼
어산리 대숲
나눔
포행
여자만 여자
그냥, 좋다
먹감나무 반닫이
일곱 살 때 기억
추억 소환·1
추억 소환·2
추억 소환·3
추억 소환·4
추억 소환·5
봄맞이, 2024년
제3부 | 몸이 먼저 안다
고향 가는 길
멍
불면증
몸이 먼저 안다
돌에 물을 치다
돌의 자리
돌에 핀 꽃
포트홀
겨울 삽화
열섬
총선 유감
수박과 개딸
꽝이다
가끔씩, 나도 가끔 실성하고 싶다
제4부 | 달빛, 무월리
삼지내 돌담길
달빛, 무월리
느티나무 학교
죽화경의 정원북
소쇄원에 들다
명옥헌에 발을 들여 놓다
오층석탑 초록에 들다
관어정 풍경
독수정원림
취가정 오르는 길
식영정 단풍을 맞다
부용당 연지에 빠지다
몽한각에 눌러 앉다
추월산 와불
제5부 | 추월산, 버섯을 품다
서시
송이버섯
능이버섯
싸리버섯
느타리버섯
말굽버섯
상황버섯
영지버섯
꽃버섯
동충하초
민자주방망이버섯
운지버섯
달걀버섯
독우산광대버섯
알광대버섯
노랑꼭지외대버섯
해설
이재창| 그리운 어머니 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오종문| 담양 다르게 보기, 역사와 삶을 읽다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평론가 유성호 교수는 “시력 반세기가 되는 그의 정형미학은 시조시단에 가지는 위상이 크고 각별하다”며, “자연 사물을 통한 존재론적 깨달음의 영역과 타자의 삶에 대한 애틋한 사랑은 이한성 시조미학의 고갱이가 되고 남을 것이다” 또한 “적막하면서도 역동적이기 그지없는 그의 내면 풍경은 정갈하고 심미적인 눈길을 통해 존재론적 결핍을 치유하는 상상의 매개물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그의 작품은 “우리 서정시가 가지는 촌철살인과 같은 힘”을 지니고 있다.
이한성 시인의 전체적인 문학적 특성은 다음의 몇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시조 형식의 다양한 시도를 통해 현대시조의 시적 역량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 하였다. 그는 초기부터 평시조, 사설시조, 양장시조 등의 형식을 동원한 연작시조를 섭렵하고, 무거운 역사성의 주제를 장시조로 소화해 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장시조 「과정」, 「물레돌리기」, 연작시조 「비가」 「보름제」, 「은유」 「땅」 「해학」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둘째, 은유와 상징 그리고 새로운 이미지 창조 등 시적 기교가 돋보인다. 평단에서도 그의 시조를 두고, “시의詩衣를 폈다 접는 기교에서 유로되는 한국적인 멋과 가락을 창조하고 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셋째, 이한성 시인이 시조시단에 보여준 가장 큰 업적은 현실의식의 문학적 반영과 울림이다. 5·18 광주의 증언, 체험의 재구성인 장시조 「울음 타는 市街-광주 5·18 그날의 점묘」는 시조단에서 그 어떤 시조시인도 해내지 못한 시인으로서 시인의 본분을 다한 대역작에 속한다. 넷째, 현대시조의 다양한 주제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그의 시조는 시적 대상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통해 드러나는 감각적 언어를 구사한다. 그는 뛰어난 감성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그것을 시적 언어로 간명하게 변환시키는 능력이 탁월한 시인이다.
그는 시와 진실한 사람들을 한없이 좋아한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 친구를 팔고, 애인을 팔고, 양심을 파는 그런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분노를 꿀꺽꿀꺽 삼키면서 늘 동정의 뜨거운 눈물을 보내곤 한다. 인간의 내부가 시를 쓸만큼 완성되어야 참된 시가 비치고, 또 하나의 인간이라는 시가 된다고 믿는다. 참된 인간의 내부를 표출하는 작업이 곧 시를 쓰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의 작품들은 꾸밈이 없이 진솔하다. 그리고 그 진솔한 감동은 가슴에 와 박힌다.
평론가 서평
그리운 어머니 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한성 시인의 작품에서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끈적끈적한 우리 민중사의 이야기 한 단면을 보여준다. 또한 시를 읽는 사람의 내면에 깊고 밝은 울림을 자아낸다. 그는 이제까지 세상사의 임없는 현상과 사물에 대한 해석과 분석 방법을 시조의 정형미학이라는 카테고리에 녹여내는 작업을 해왔다.
이한성 시인의 작품 특징은 여전히 현대적 감각의 은유와 상징, 현실 인식의 새로운 이미지의 시적 기교를 보여주는 현대시조의 전범에 속한다. 시의詩衣를 폈다 접는 기교에서 파생되는 한국적인 멋과 가락을 창조하는 신선함이 그의 작품의 본질이다. 또한 의미의 긴장성과 이미지의 조형성, 상상력의 자유스러움과 인식의 명료성을 위한 대립과 갈등의 절제된 가락 속에서 현대적인 이미지가 섬세하게 도출된다.
- 이재창, 「해설」 중에서
시인의 말
한 동네를 병풍처럼 두른 대숲 아래
육간 겹집 와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금도 그 인연으로 대숲을 좋아한다.
등단, 쉰둘 해 여름
이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