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세계문학 거장 3인의 대표작을 새로운 표지로 만나다
문학동네 숏클래식 리커버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 필립 로스
『에브리맨』
짧은 이야기로 영원한 울림을 선사하는 마스터피스
세계문학 거장 3인의 대표작을 새로운 표지로 만나다
체코의 국민작가 보후밀 흐라발, 202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욘 포세,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 필립 로스.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보여주는 세 작가의 대표작을 새로운 장정으로 선보인다. 이번 ‘문학동네 숏클래식 리커버’에 포함된 작품은 『너무 시끄러운 고독』 『아침 그리고 저녁』 『에브리맨』으로, 짧은 이야기 속에 결코 가볍지 않은 의미와 무게를 담아내며 묵직한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 소설들이다. 이 작품들은 처음 출간된 이후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한 것은 물론,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새로운 고전으로 불려도 손색없을 만큼 눈부신 찬사를 받아왔다.
한정판으로 출간되는 이번 ‘문학동네 숏클래식 리커버’는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판형으로, 뒤표지에는 작품의 내용을 표현한 감각적인 그림이 자리한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체코 프라하 거리, 『아침 그리고 저녁』의 바다, 『에브리맨』의 묘지를 그린 세 권은 각각의 그림 자체도 아름답지만, 순서대로 이어붙이면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어 더없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짧은 이야기로 영원한 울림을 전하는 ‘문학동네 숏클래식 리커버’는 세 작가의 팬들뿐 아니라 이들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도 특별한 선물이 될 것이다.
목차
에브리맨 11
옮긴이의 말 239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
2006년에 발표된 『에브리맨』은 필립 로스의 스물일곱번째 장편소설이며, 그에게 세번째로 펜/포크너 상의 영광을 안겨준 작품이다. 한 남자가 늙고 병들어 죽는 이야기인 이 소설을 통해 필립 로스는 삶과 죽음, 나이듦과 상실이라는 문제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깊은 사유를 보여준다. 소설은 황폐한 공동묘지에서 시작한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누군가의 가족이거나 친구들이다. 그들은 막 세상을 떠난 한 사람을 추억하고 있다. 소설 『에브리맨』의 주인공은 바로 이 장례식의 당사자인 ‘그’이다. 이 작품은 이렇게, 특별하지 않은, 그저 그런 보통의 존재인 한 남자의 죽음에서 시작한다. 소설은 노년 시절의 ‘그’의 삶에 초점을 맞춰 그의 인생 전반을 돌아보며, 삶과 죽음 그리고 늙어간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는 미국 뉴저지의 한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난다. 그의 아버지는 ‘에브리맨’이라는 이름의 보석상을 운영하고 있다. 대공황이라는 어려운 시절에도 손님들에게 스스럼없이 외상을 주는 사람 좋은 아버지, 가족에게 충실한 온화한 어머니, 여러 방면에 뛰어나며 자신에게 한없이 자상하고 듬직한 형. 그는 안온한 가정에서 충분히 사랑받으며 커간다. 그는 오랫동안 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고 미술학교에 들어가지만, 세속적인데다 모험을 싫어하는 탓에 그림을 포기하고 뉴욕의 광고회사에 취직해 아트 디렉터로 성공을 거둔다. 그 일은 그에게 경제적 풍요와 아름다운 여인들을 가져다주지만, 그는 결혼에서만은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세 번의 결혼이 모두 실패로 끝난 것.
‘그’는 이제 직장에서 은퇴하고 저지쇼의 은퇴자 마을 스타피시비치에 내려와 머문다. 9?11 테러 이후 피신하듯 뉴욕을 떠나 이곳에 자리잡고 그토록 갈망하던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한다. 스타피시비치 주민들을 위한 그림교실도 열지만, 어쩐지 허전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계는 죽어가는 잿빛 세계이다. 이 은퇴자 마을에서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그 사람이 무엇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제 그들의 이력이란 의학적 이력과 똑같은 것이 되어버렸고, 의학적 정보 교환이 무엇보다 중요시된다. 안 그래도 쇠약해져가는 몸은 잦은 수술과 예고 없이 찾아오는 통증을 감당하느라 지쳐 있는데다, 느닷없는 외로움과 고립감은 그를 한없이 나약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일은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 진행되었다. 이제 한 해도 입원 없이 지나가지 않았다. 장수한 부모의 아들이고, 토머스 제퍼슨 고등학교에서 공을 들고 뛰던 때와 마찬가지로 변함없이 건강해 보이는 여섯 살 위의 형을 둔 동생이었지만, 그는 아직 육십대에 불과한데도 건강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몸은 늘 위협을 당하는 것 같았다. 그는 세 번 결혼을 했고, 애인들과 자식들과 성공을 안겨준 흥미로운 일자리를 가졌지만, 이제 죽음을 피하는 것이 그의 삶에서 중심적인 일이 되었고 육체의 쇠퇴가 그의 이야기의 전부가 되었다. (본문 96p)
그들 모두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점점 기억력이 나빠진다고 때로는 농담처럼, 때로는 진담처럼 불평을 했다. 또 달과 철과 해가 얼마나 빠르게 지나가는지 모른다고, 인생이 이제는 전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본문 108p)
가장 슬프고 강렬한 삶, 그것은 바로 죽음!
자신보다 스물다섯 살이나 어린 ‘뇌가 없는 모델’ 때문에 사려 깊고, 성숙하고, 헌신적이었던 두번째 아내 피비를 배신했던 일은 그의 가슴을 특히 쓰라리게 한다. 여전히 자신에게 위로와 위안이 되는 딸 낸시를 보면 그 회환은 더욱 사무친다. 게다가 자신에게 그토록 자상했던, 그리고 자신이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형 하위와의 관계가 멀어진 것도 그의 마음을 괴롭힌다. 형이 자신보다 건강한 육체를 물려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삶에 대한 의욕을 그만큼 강하게 전달하는 사람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그토록 사랑했던 형에게마저 질투를 느끼고, 형과의 관계도 점점 소원해진 것이다.
자신이 없애버린 모든 것, 이렇다 할 이유도 없는 것 같은데 스스로 없애버린 모든 것, 더 심각한 일이지만, 자신의 모든 의도와는 반대로,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없애버린 모든 것을 깨닫자, 자신에게 한 번도 가혹하지 않았던, 늘 그를 위로해주고 도와주었던 형에게 가혹했던 것을 깨닫자, 자신이 가족을 버린 것이 자식들에게 주었을 영향을 깨닫자, 자신이 이제 단지 신체적으로만 전에 원치 않았던 모습으로 쪼그라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깨닫자, 그는 주먹으로 가슴을 치기 시작했다. (본문 208p)
그는 언제나 안정을 통해 힘을 얻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 ‘안정’이라는 것은 ‘정체’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의 삶에는 황폐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더이상 과거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현실을 다시 만들 수도 없다. 이대로 버티고 서서 다가오는 삶을 (혹은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뿐. 물론 그에게도 최상의 건강과 좋은 몸 상태에서 우러나오는 가없는 자신감으로 보낸 세월도 있었다. 육체적 매력이 넘치고 수많은 여자들로부터 끊임없는 관심을 받았던 시간들. 병이라는 역경과 잠복해 있는 불행을 면제받았던 시간들. 하지만 지금 그의 앞에 있는 것은 목적 없는 낮과 불확실한 밤과 신체적 쇠약을 무기력하게 견디는 일과 말기에 이른 슬픔과 아무것도 아닌 것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친구들의 죽음과 병에 대한 소식이 하나둘 들려온다. 그림교실에 나오던 한 여인은 병이 주는 육체적 고통과 고립감, 두려움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는 이 은퇴자 마을을 떠나 뉴욕으로 돌아갈 꿈을 꾼다. 그곳에서 사랑하는 딸 낸시와 함께 지내는 꿈을. 하지만 피비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이 꿈은 시도도 해보지 못한 채 허망하게 깨진다. 경동맥 수술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그는 부모님이 묻혀 있는 무덤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무덤 파는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는 그 무엇보다도 큰 위안을 얻는다.
그들은 그저 뼈, 상자 속의 뼈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뼈는 그의 뼈였다. 그는 그 뼈에 가능한 한 바짝 다가가 섰다. 그렇게 가까이 가면 그들과 연결이라도 될 것처럼, 미래를 잃은 데서 생겨난 고립감은 완화되고, 사라진 모든 것과 연결되기라도 할 것처럼. (…) 육신은 녹아 없어지지만, 뼈는 지속된다. 내세를 믿지 않고, 신은 허구이며 지금 이것이 자신의 유일한 삶이라는 사실을 의심의 여지 없이 믿고 있는 사람에게 뼈는 유일한 위로였다. (본문 223p)
그러고 나서 그저 평범한 일상의 일을 치르듯 그는 수술을 위해 병원을 향한다. 그리고 그 누구도 곁에 없이 홀로 수술실에 들어간다. 자신이 다시 충만해지길 바라면서. 하지만 그는 결국 다시 깨어나지 못한다. 그렇게 이제 ‘있음’에서 풀려나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고 만다. 그토록 두려워하던 그곳으로.
그 무겁고, 무덤 같고, 바위 같은 무게는 말한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고.
“(이 소설은) 한 평범한 사람이 늙고 병들고 죽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사람이라면 딱 이렇게 늙고 병들고 죽겠구나 하는 느낌 그대로를 전달해준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딱 그대로를 전달해준다. 괜히 초연한 척하지도 않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고, 어떤 감상에도 빠지지 않는다. 그냥 딱 이렇겠거니 하는 거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 어떤 섬뜩하고 무시무시한 감동 같은 것이 찾아온다.” 옮긴이의 말에서
필립 로스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극히 꺼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에브리맨』 발표 후 가진 한 인터뷰에서 무엇 때문에 죽음이 두려운가를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망각. 더이상 살아 있지 않다는 것, 살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없다는 것. 하지만 내가 열두 살 때 느꼈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지금 느끼는 두려움 사이의 차이점은 지금은 현실에 대한 체념 같은 것이 있다는 겁니다. 전에는 내가 언젠간 죽는다는 게 부당하다고 여겨졌는데, 지금은 아닙니다.”
『에브리맨』은 주인공인 ‘그’의 이름을 단 한 번도 밝히지 않는다. 다른 모든 등장인물들은 이름을 밝히고 있음에도 그는 그저 ‘그’일 뿐이다. 필립 로스는 이 소설을 통해 모두가 피하고 싶지만 모두가 언젠가는 맞이하게 되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특별할 것도 없고, 그저 우리가 맞아야 할 삶의 한 부분이라고 이야기한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 이름 없이 ‘그’라고만 표시되는 것도 작가의 이런 의중이 담겨 있으리라.
건강과 젊음이 떠나고 쇠잔해지는 육체. 찬란했던 지난 시절에 대한 추억을 곱씹으며 곧 찾아올 영원한 망각을 기다리는 삶. 서글프고 애달프지만 그것이 바로 늙어가는 것임을,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삶의 일부임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임을 이 소설은 이야기하고 있다. 필립 로스는 ‘죽음 역시 삶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에두르지 않고, 과장하지도 않으면서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소설 속에서 ‘그’를 애도하던 이들은 모두 자리를 떠났다. 이제 그 빈자리에 독자들이 남아 그를 애도한다. 하지만 그들이 애도하는 것은 소설 속 주인공인 ‘그’임과 동시에, 언젠가는 늙고 죽어갈 우리 모두, 결국 자신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