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건축의 일곱 등불』은 러스킨의 연구 이력의 둘째 단계에 속한다. 건축을 전적으로 주제로 삼은 저작은 이 책 이전에 『건축의 시Poetry of Architecture』가 있고, 그 이후에는 『베네치아의 돌들』이 있다. 『베네치아의 돌들』 이후에는 주로 강의 내용을 출판한 것인데 전적으로 건축만을 주제로 한 강의는 없고 주로 건축을 다루거나 부분적으로 다룬 것들이다. 『건축과 회화에 대한 강의Lectures on Architecture and Painting』(1853) 1강, 2강, 『두 개의 길The Two Paths』(1859) 4강이 건축을 다루며, 1873년에 한 강의의 내용을 출판한 『발다르노Val d’rno』와 1874년에 한 강의의 내용을 출판한 『피렌체의 미학·수학 유파들The Æsthetic and Mathematic Schools of Florence』이 주로 건축을 다룬다. 건축에 대한 그의 생각의 기본적인 골격은 아무래도 『건축의 일곱 등불』과 『베네치아의 돌들』에 담겨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그 이후에 생각의 수정, 심화, 진전, 확대가 있겠지만, 예의 기본적인 골격을 크게 벗어나는 변화는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건축의 일곱 등불』의 경우, 러스킨은 1880년 3판에서 추가한 55개의 주석을 통해 자신의 바뀐 견해를 밝히고 있지만, 책의 기본 취지에 해당하는 것이 바뀐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기본 취지는 나중에 더 진전되고 확대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는, 러스킨 자신이 밝힌 재출간의 이유에 “내가 알기로 대중은 여전히 이 책을 좋아”한다는 점 외에도 “내가 그 후에 썼던 글의 맹아가 실은 여기에 있”다는 점이 포함되는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러스킨은 “건축을 진전시키기 위해서” “건축에 뒤죽박죽 들러붙은 편파적 전통들과 도그마들로부터, 건축의 모든 단계와 양식에 적용할 수 있는 저 거대한 올바른 원칙들을” 구해내고자 한다.(이상 15쪽) 이 법칙들은 “모든 노력의 길잡이가 될 어떤 지속적이고 보편적이며 논쟁의 여지가 없는 올바른 법칙들”이며 “인간의 지식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인간 본성에서 보는 것과 같은 불변성을 지식의 증가나 결함에 의해 공격을 받거나 무효화될 수 없을 정도로 가지고 있을 그러한 법칙들이다.” 이 법칙들은 “어떤 한 예술 분야에만 해당”되지 않으며 그 범위는 “인간 행동의 전체 지평을 포함한다.” “이 법칙들의 여러 측면들 가운데 최초 형태의 예술[건축 예술]에 특유하게 속하는 측면들”(이상 16쪽)이 바로 ‘건축의 일곱 등불’이다. 그렇다면 러스킨이 제시하는 ‘건축의 일곱 등불’은 건축에 특유한 것들인 동시에 인간 행동 전체에 공통된 것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제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면서 등불들 각각을 살펴보기로 하자.
목차
1880년판 서문 / 7
초판 서문 / 10
서설 / 14
1장 봉헌의 등불 / 23
2장 진실의 등불 / 51
3장 힘의 등불 / 104
4장 아름다움의 등불 / 150
5장 생명력의 등불 / 209
6장 기억의 등불 / 247
7장 복종의 등불 / 274
부록 / 292
『건축의 일곱 등불』 해설 · 정남영/ 309
역자 후기 · 고명희/ 355
찾아보기 / 357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작품 해설
러스킨과 근대
「삶과 그 예술의 신비Mystery of Life and its Arts」에서 러스킨은 자신의 삶을 실망과 좌절의 연속으로 개관한다. 그는 스무 살에서 서른 살까지 그의 “삶의 가장 강렬한 10년” 동안, 레이놀즈(Joshua Reynolds) 이후 영국에서 가장 훌륭한 화가라고 생각하는 터너(J. M. W. Turner)의 예술가로서의 우수성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더군다나 터너는 이 노력의 “피상적 효과가 가시화되기도 전”에 사망했다. 러스킨은 탁월한 재능을 가진 예술가가 헛되이 창작하다 헛되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터너는 러스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중으로부터 외면을 받았던 것이다.
러스킨은 회화 연구를 하면서 건축 연구를 병행했다. 자신의 말로는 회화 연구에서보다 “덜 열심일지는 몰라도 더 신중한 노력”을 투여했다고 한다. 러스킨은 건축의 경우에는 회화의 경우와 달리 공감해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나 이들과 함께한 러스킨의 노력도 (이미 당대의 건축계 주류와의 관계를 언급한 데서 추측할 수 있듯이) 대세에 밀려서 좌절되었다. “우리가 도입하려고 한 건축은 현대 도시들의 분별 없는 사치, 형태를 왜곡하는 기계적 구조, 지저분한 비참함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 나는 나의 힘의 이 새로운 부분 또한 헛되이 쓰였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리고 철로 된 거리들과 수정으로 된 궁전들에서 물러나 지질학과 식물학 연구로 관심을 돌렸다”.
그 이후에도 영국의 주류 사회는 러스킨에게 도통 맞지 않는 곳이었다. 러스킨은 당대의 현실로 관심을 돌리면서 정치경제학 비판으로 나아갔는데, 이 비판 또한 당시 영국의 자본주의 추진 세력에게는 당연히 못마땅한 것이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1860년에 일련의 정치경제학 비판 글들이 『콘힐 매거진Cornhill Magazine』에 연속으로 실리다가 (편집자의 우호적인 태도와 과감함에도 불구하고) 독자들과 출판사의 반대로 네 편에서 중단된 일이다. (이 글들은 나중에 Unto This Last라는 책으로 출판된다.) 사실 앞에서 말한 “근본적인 차이”―즉 삶을 바라보는 시각의 근본적인 차이―는 건축계 주류와의 사이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당대 영국 자본주의를 추진하는 세력들 전체와의 사이에도 존재했었다. 당대의 자본주의 추진 세력의 사고는 근본적으로 공리주의적이다. 즉 인간의 모든 능력과 힘을 물질적 효용을 생산하는 수단으로만 본다. 이들은 “고기가 삶(생명)보다 가치 있고 옷이 몸보다 가치 있다고 생각하며, 땅을 마구간으로 보고 땅의 결실들을 말 사료로 보는” 자들이다. 이들의 궁극적 목적은 상품화된 물질적 효용 즉 교환가치의 재현자인 자본의 축적이다.
이와 반대로 러스킨은 물질적 효용을 삶에 도움을 주는 도구로 본다. 그리고 예술처럼 그 자체로는 물질적 효용이 없는 ‘무용함’이 삶의 목적이다. ‘무용함’ 자체가 목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무용함’은 공리주의와의 근본적인 차이를 나타낼 뿐이고, 러스킨이 깊은 의미에서 말하는 것은 예술을 비롯해서 삶의 목적이 되는 어떤 대상을 신의 활력을 분유(分有)한 것으로 보는 태도이다. 여기서 ‘신’이라는 단어에 우리가 종교적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철학적 의미의 ‘신’으로 읽으면 된다. 사실 러스킨의 철학은 그것이 활력의 철학이라는 점에서 스피노자와 통하는데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신’은 ‘무한한 활력’에 다름 아니며, 러스킨에게 있어서도 그렇다. 러스킨은 이 무한한 활력이 만물에 나뉘어 부여되어 있고 만물은 이 활력으로 인해서 그 나름대로 신성하고 아름답다고 본다. 물론 아무나 이 신성함과 아름다움을 보는 것은 아니다. 이 신성함과 아름다움을 보고 공감하고 경탄하고 기뻐하는 활력이 필요하다. (이것 역시 신이 부여한 활력이다.) 그래서 러스킨이 “인간의 효용과 기능은 … 신의 영광의 목격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특정의 종교적 교리를 설파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진정한 의미의 ‘인간’에게서 활력이 가진 핵심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활력은 개인마다, 집단마다 그 정도가 다르게 나타나며, 역사적으로 상승과 하강을 겪는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와서 유럽 거의 전체에 걸쳐서 이 활력의 상태에 전에 없이 심각한 문제가 생기게 된다. 바로 이로 인해서 예술적 능력은 쇠퇴하고 이 쇠퇴에 대한 감이나 인식이 없는 근대 추진자들과 이들을 비판하는 러스킨 사이에 근본적인 어긋남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제 활력의 상태에 생긴 이 문제를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삶과 그 예술의 신비」에서 러스킨은 ‘인간의 일’, 즉 인간이 자신의 삶을 위해 “인간의 형태를 띠고 사는 동안” 해야 하는 일로 ① 먹을 것을 생산하기, ② 입을 것을 생산하기, ③ 거처를 만들기, ④ 예술이나 과학 등 사유와 관련된 것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를 든다. ①, ②, ③은 물질적 효용의 차원인데, 앞으로는 ‘유용성의 차원’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④는 삶이 단순한 물질적 욕구의 충족을 넘어서 꽃처럼 피어나는 차원인데, 이는 ‘활력의 차원’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①, ②, ③, ④ 모두 인간의 힘이 자연력과 결합하는 방식을 나타내는데, 이 방식은 이 두 차원을 따라 둘로 나뉜다. 유용성의 차원은 물질의 법칙이 적용되는 차원으로서 자연력이 인간에게 이전되고 다시 자연으로 되돌아간다. 그런데 가령 자연력이 인간으로 이전되어 있는 동안에는 이전된 양만큼 자연에서는 감소된다. 활력의 차원에서는 자연력이 감소되지 않고 거기에 각인된 인간의 힘과 함께 결합된 상태로 보존되며, 이 과정에서 양자 모두가 새로운 차원의 힘으로 상승한다.
이제 인간의 삶의 역사의 정상적 진전은 유용성의 차원에서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킨 후 활력의 차원에서 각 집단(민족 등)이 가진 능력에 따라서 가능한 만큼 최대로 상승하는 것이다. 이것을 ‘인간 되기’라고 부르기로 하자. 두 차원 모두를 놓고 볼 때 둘째 차원이 이 과정을 비로소 ‘인간 되기’로서 결정한다. 만일 둘째 차원으로 도약하지 못하고 첫째 차원을 충족하는 데서 끝난다면, 그것은 ‘만족한 동물’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차원이 이런 의미에서 결정적이지만, 사실 두 차원이 모두 필수적이다. 의·식·주는 인간의 생존의 기본 조건으로서 생존 없이는 활력적인 삶도 없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유용성의 차원에서 예술성이 자라 나온다는 점이다. 사물을 인간에게 유용한 형태로 바꾸는 능력인 기술(특히 손기술)이 고도화되고 다양화되면서 예술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러스킨은 “모든 건축예술은 컵과 받침대의 모양을 짓는 데서 시작해서 멋진 지붕에서 끝난다”고 한다.
러스킨에게 근대는 이러한 ‘인간 되기’의 경로에서 이탈한 시대이다. 러스킨의 시선에 먼저 들어온 것은 예술적 능력의 전반적인 쇠퇴이며, 그다음에 그가 주의를 돌린 곳에서 본 것은 자본주의적 번성이라는 외양에도 불구하고 생존의 기본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처참한 민중의 모습이다. 러스킨은 이 모습을 서양의 긴 역사적 과정에 놓고 한탄한다. 6천 년 동안 농업이 이어져 왔음에도 50만 명이 굶어 죽는 일이 발생하고 6천 년 동안 직조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수도들의 거리는 내다버린 누더기와 썩은 넝마의 판매로 악취가 나며, 6천 년 동안 집짓기를 해왔음에도 그 모든 기술과 힘의 대부분이 흔적도 남아 있지 않고 떨어져 나온 돌들만 들판에 거추장스럽게 나뒹굴거나 시냇물에서 물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유용성의 차원이 피폐해질 뿐만 아니라 유용성의 차원과 활력의 차원 사이의 건강한 연결이 단절된다. 인구의 다수가 유용성의 차원에서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한편, 이 욕구를 충족시킨 소수는 물질적 이익의 차원에서 더 많은 축적(수익, 이윤, 지대 등)을 원할 뿐 자연력과의 결합을 활력으로 상승시키는 일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리하여 활력의 양성과 발휘는 현저하게 쇠퇴하게 되는 것이다. 러스킨은 수익을 우선으로 하는 조건에서는 진정한 건축이 이루어지기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만일 어떤 사회가 스스로를 조직해서 가장 아름답고 가능한 한 가장 강한 집들을 예술을 위해서든 사랑을 위해서든 짓고자 한다면? 궁전을 그 자체를 위해서 짓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집을 짓고자 한다면―그런 사회는 볼 만한 어떤 건물을 지을 것이지 수익을 가져올 건물을 짓지는 않을 것이다. 진정한 건축물은 자신을 위해 집을 원하는 사람이 지으며 자신의 비용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식으로 짓는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남이 좋아하는 식으로 짓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것이 근대에 와서 활력의 상태에 일어난 심각한 문제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 되기’는 정체 혹은 후퇴를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러스킨에게 이러한 ‘인간 되기’의 실패가 절망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 “삶이 [그]를 실망시킬수록 삶은 [그]에게 더 근엄하고 놀라운 것이 되었”으며, 그는 “예술 혹은 다른 분야에서의 모든 지속적인 성공은 … 인간의 전진하는 힘에 대한 근엄한 믿음에 의해서, 혹은 인간의 유한한 부분이 언젠가는 불멸성에 함입되리라는 약속에 대한 근엄한 믿음에 의해서 하위의 목적들을 다스리는 데서 온다는 것을 점점 더 명확하게 보았고, 예술 자체는 이 불멸성을 천명하려는 노력에서만 … 힘찬 활력이나 명예를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점점 더 명확하게 보았다.”
러스킨이 『건축의 일곱 등불』을 썼던 때(1849년)는 그에게 아직 희망이 있던 때였다. 그가 나중에 건축에 대해 말하기를 포기했지만, 이는 자신의 한 말이 틀려서가 아니라 말해도 소용이 없어서였다. 아무리 말해도 귀에 ‘돈’못이 박혀있는 근대의 주류 세력을 꿰뚫고 현실에 영향력을 발휘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