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우리 시대의 사상가 자크 랑시에르가 말하는 픽션의 정치,
아무것도 아닌 것을 모든 것으로 바꾸는 지적 모험의 서사
몫 없는 자들의 말과 글은 어떻게 픽션에 새겨지는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모든 것으로 바꾸는 혁명에 대한 이야기
우리 시대의 사상가 자크 랑시에르가 ‘픽션의 정치’를 주제로 쓴 『픽션의 가장자리』가 출간됐다. 보통 문학 용어로 통용되는 ‘픽션’은 실재와 가상, 현실과 비현실, 진실과 거짓을 나누는 문제와 결부된다는 점에서 오랜 철학적 물음이기도 하다. 랑시에르는 특이하게도 문학뿐만 아니라 사회과학 또한 인간과 사회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픽션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이 책에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한 챕터로 의미 있게 다뤄지고 있다. 이 책은 제목에서 쉽게 유추할 수 있듯이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1990)라는 랑시에르의 대표적인 정치철학적 저작과 마주 서 있는 미학적 작품이다.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가 ‘정치의 감성학’을 이해하기 위한 주요 입구 중 하나였다면, 『픽션의 가장자리』에는 그에 대응하는 ‘미학의 정치’의 핵심적인 아이디어가 새겨져 있다.
이 책은 스탕달에서부터 발자크, 보들레르, 위고, 모파상, 프루스트, 릴케, 에드거 앨런 포, 콘래드, 제발트, 버지니아 울프, 포크너를 거쳐 브라질 현대 작가 주앙 기마랑이스 호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학작품 분석을 통해 문학혁명이 어떻게 민주주의의 가장자리를 따라 나 있는지 살핀다. 또 『자본론』에서 마르크스의 극작법을 분석하고, 근대와 현대 픽션에 등장한 새로운 주체는 누구이고 공통의 세계는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우리가 세계라고 부르는 것과 그 세계를 살아가는 방식들을 살펴보는 데 사유의 지평을 넓혀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 책은 “이와 같은 온갖 모험들을 통해 계속되는 것은 바로 아무것도 아닌 것을 모든 것으로 변화시키는 혁명에 대한”(20쪽) 이야기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픽션의 정치’를 통해 어떻게 주체로 등장하고, 변화하지 않는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탐구하는 책이다.
목차
서문
1부 문과 창문
1. 유리창 뒤에서: 스탈당과 발자크
2. 빈자들의 눈: 보들레르, 빅토르 위고, 모파상
3. 엿보는 자들이 보는 것: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거리를 향해 난 창문: 릴케의 『말테의 수기』
2부 과학의 문턱
1. 상품의 비밀: 마르크스의 『자본론』
2. 인과성의 모험들: 추리소설의 역사
3부 실재의 기슭
1. 상상할 수 없는 것: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들
2. 문서의 풍경들: 제발트의 소설들
4부 아무것도 아닌 것과 모든 것의 가장자리
1. 임의의 순간: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들
2. 빈자들의 두 이야기: 윌리엄 포크너의 『8월의 빛』
3. 말 없는 자의 말: 윌리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
4. 한없는 순간: 주앙 기마랑이스 호자의 소설들
감사의 말
옮긴이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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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출판사리뷰
랑시에르가 말하는 픽션의 정치
: 공통의 세계와 공통의 이야기
랑시에르는 철학자인가, 정치학자인가, 미학자인가, 역사학자인가? 도서관에 가보면 랑시에르의 책은 한 곳에 응축되어 있지 않고 철학, 사회과학, 역사, 예술 등 여러 분야에 흩어져 있다. 그만큼 랑시에르는 철학에도, 역사에도, 문학에도 속하지 않는 글을 쓴다. 그는 의미를 제공하는 전통적인 철학자의 지위나 역사적 사실을 서술하는 역사가의 지위 모두를 거부하며, 오히려 철학, 역사, 문학이라는 분과 학문들 사이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글쓰기를 수행한다. 정치와 예술을 넘나들며 당대의 이론적, 실천적 상황에 논쟁적으로 개입하는 랑시에르의 사상은 현대 담론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의 사상적 여정에서 첫 번째 중요한 분기점은 루이 알튀세르와의 만남이었다. 그러나 1968년 5월혁명 이후 알튀세르와 불화를 겪었고, 결국 결별했다. 기본적으로 알튀세르는 노동자들에게 착취와 혁명을 가르치는 교사의 입장이었고, 이는 지식인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노동자의 목소리가 전달될 수 없다는 논리와 같았다. 랑시에르는 이런 지식인과 무지한 대중 사이의 나눔을 문제 삼았고, 알튀세르와 결별한 뒤 약 8년간 19세기 노동자들과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남긴 기록물에서 지적 평등을 입증하는 다양한 사례들을 조사했다. 이러한 작업의 결실이 바로 국가 박사학위 논문인 『프롤레타리아의 밤』(1981)이다. 그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말할 수 있고, 사유할 수 있으며, 다른 세상을 꿈꾼다는 것을 밝혀냈다. 랑시에르는 정치적 주체가 특정한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에 의해서 미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말을 들리게 하는 주체화의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픽션의 가장자리』는 랑시에르 고유의 사상과 글쓰기 전략이 담긴 중요한 책이다.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불화』와 같은 저작에서 ‘몫 없는 자들의 몫’이란 개념을 통해 아무것도 갖지 못한 이들의 정치적 주체화를 끌어냈듯이, 이 책에서는 ‘보잘것없는 존재’들과 ‘임의의 순간’에 대한 분석으로 자신의 사상을 펼쳐간다. 랑시에르는 이 책에서 아무리 보잘것없는 인간일지라도 영혼의 깊이를 지닌 주체이고, 몽상이라는 비활동이 세계의 활동과 조화를 이루는 충만한 순간이기도 한 임의의 순간이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어떤 삶의 단순한 불행을 모든 것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임의의/보잘것없는 순간은 지배적인 시간, 즉 승리자들의 시간의 ‘승리’가 가장 확실시되었을 때조차 승리자들의 시간을 폭발시키는 힘이다. 지배적인 시간이 말 바깥, 시간 바깥에 있는 이들을 밀쳐낸 곳, 아무것도 아닌 것의 가장자리에서 이 힘은 작동한다.”(248쪽)
‘아무것도 아닌 것’을 ‘모든 것’으로 만드는 것. 공통의 세계와 공통의 이야기를 구축하고자 하는 것. 이것이 랑시에르가 말하는 ‘픽션의 정치’이다. 이는 버지니아 울프, 윌리엄 포크너, 주앙 기마랑이스 호자의 소설을 분석하면서 더 자세히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감각적인 모험들에 의해 말은 육신이 되어 삶을 그 목적지에서 우회시키고, 밤은 정상적인 낮과 밤의 순환을 동요시키며, 창문을 통한 시선은 프롤레타리아 신체의 분할을 낳는다. 또한 이 감각적인 모험들에 의해 훼손된 조각상들, 벼룩이 들끓는 아이들, 광대들의 재주넘기는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문자 기호 앞에서의 무지한 자들의 암중모색은 또 다른 지적 삶을 규정한다. 이와 같은 온갖 모험들을 통해 계속되는 것은 바로 아무것도 아닌 것을 모든 것으로 변화시키는 혁명에 대한 하나의 동일한 조사연구이다.”(19~20쪽)
새로운 픽션, 새로운 주체의 탄생
랑시에르는 아리스토렐레스의 『시학』에서 픽션의 합리성 개념을 이끌어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픽션적 합리성은 1) 원인과 결과의 연쇄[인과적 시간성], 2) 진실임직함[개연성], 3) 반전[급전]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이 요소는 지금까지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행위주체들의 수가 제한적이었다고 랑시에르는 지적한다. 『오이디푸스 왕』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의 행위주체는 소수의 행동하는 인간들, 즉 왕이나 귀족에 국한됐다. 나머지 대다수 인간은 노동이나 재생산의 굴레에 갇혀 늘 같은 일만 반복한다고 여겨졌기에 결코 픽션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들은 물건을 만들거나 아이를 양육하고, 명령을 실행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며, 그 전날 했던 것을 다음 날 되풀이한다. 이 모든 것에는 당신을 하나의 운명에서 정반대되는 운명으로 이행하게 할 수 있는 어떠한 기대도 없고, 어떠한 기대의 반전도 없으며, 범할 어떠한 실수도 없다. 그러므로 고전적인 픽션적 합리성은 극히 적은 수의 인간 및 인간 활동과 관련되었다.”(9쪽) 이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진실은 반복과 재생산이라는 어둠의 세계에 머무는 수동적 인간들이 아니라 행동과 사건이라는 빛의 세계에 사는 능동적 인간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원리는 근대에 들어 전복되었다고 랑시에르는 지적한다. 마르크스로 대표되는 사회과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원리를 따르면서도 무지해도 되는, 즉 무시해도 좋은 사물들과 사람들의 세계를 진실된 세계로 격상시켰다. 이에 따라 능동적 인간들이 몰라도 되었던, 혹은 무시해도 좋았던 사람들과 사물들의 세계가 곧 진실의 세계, 지식을 생산하는 세계가 되었다. 반면 근대문학은 고전적 픽션적 합리성의 적용 범위를 넓히기보다 그 가장자리에 머물러 있던 것들에서, 가장 강렬하고 가장 복합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보잘것없는 개인에서 새로운 픽션적 합리성을 발견했다. 보잘것없는 존재들이 겪는 감정과 사건의 세계를 향해 이야기 구조를 열어젖히고, 임의의 순간을 통해 “아무것도 아닌 어떤 삶의 단순한 불행을 모든 것으로 바꿔놓”는 전략을 취했다.
그렇다면 작가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랑시에르는 제발트의 소설들을 분석한 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 작업이란 죽어 있는 것에서 삶을 창조하는 것, 낡은 것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 산업적 재료들로 예술을 창조하는 것, 사소한 사건들과 거의 지워진 흔적으로부터 역사를 창조하는 것이다. 요컨대 파괴의 활동에 이의를 제기하고 파괴의 활동을 대속하는 것이다.” 또한 작가는 “시간의 또 다른 이미지, 즉 연속과 파괴의 시간에 대립하는 공존의 시간, 평등의 시간, 순간들의 사이-표현성의 시간을 창작하”(196쪽)는 사람이다.
랑시에르가 말하는 새로운 픽션이란 무엇인가? “종속시키지도 파괴하지도 않으면서 연결시키는 공통 감각을 생산”(240쪽)하는 것이다. 즉 고전적 픽션이 전제했던 어디까지라는 한계 너머로 보잘것없는 삶과 임의의 순간들을 데려가는 것이다. “새로운 픽션은 장애인을 치료하기 위한 해결책들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새로운 픽션은 장애인들을 수용소로 보내는 자들의 지배를 중지시킨다. 새로운 픽션은 글쓰기의 시간을 통해 장애인들이 갇혀 있게 될 장소로 그들을 보내는 것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의 시간을 무한히 지연시킴으로써 그들을 현재에 붙잡아둔다.”(247쪽)
문과 창문을 지나, 문턱을 넘어, 기슭으로, 마침내 가장자리로 나아가는 이야기
『픽션의 가장자리』는 귀족과 평민을 구분했던 분리선인 ‘문과 창문’(1부)을 지나, 서사의 합리성과 과학의 합리성이 마주치는 과학의 ‘문턱’(2부)을 넘어, 작가의 상상력과 시간성을 파고드는 실재의 ‘기슭’(3부)에 머물다, 픽션이 그리는 공동체와 픽션이 약속하는 인간성을 파헤친 아무것도 아닌 것과 모든 것의 ’가장자리’(4부)로 나아간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작품 분석을 통해 전개된다. 1부 〈문과 창문〉에서는 민주주의 시대를 연 프랑스혁명 이후 등장한 문학작품들을 ‘창문’이라는 메타포로 분석한다. ‘창문’은 귀족과 평민을 분리했던 장벽을 의미하는데, 이 시대에 비로소 그 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스탕달에게 창문은 투명한 영혼의 닮음을 기반으로 귀족과 평민이 만나는 통로였지만, 발자크의 소설로 넘어오면서 창문은 다시금 창밖과 안 사이의 시야를 가로막고, 귀족과 평민을 나누는 ‘불투명한’ 장애물이 된다. 보들레르의 시와 위고, 모파상의 소설을 통해서는 현기증 나는 영혼의 깊이를 그 뒤에 감춘 ‘가난한 사람들의 눈’을,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엿보는 자의 시선을 통해서는 ‘거짓의 진실’, 즉 앎에 도달하는 방식을 살펴본다. 릴케의 『말테의 수기』를 통해서는 거리를 향해 난 창문 바깥으로 나가 보는 법을 다시 배우는 시인의 의미를 파헤친다.
랑시에르에게 사회과학과 문학은 모두 픽션의 논리에 따라 우리가 살아가는 공통의 세계를 지각 가능하고 사유 가능하게 하는 형식들이다. 바로 이와 같은 관점에서 2부 〈과학의 문턱〉 1장 〈상품의 비밀〉에서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2장 〈인과성의 모험〉에서는 추리소설이 분석 대상이 된다. 우선 랑시에르는 비극으로서 과학의 속성, 그리고 과학과 역사의 길항 작용을 조직하는 마르크스의 독특한 극작법을 조명한다. 『자본론』에는 등장인물들 사이의 적대감과 대립 구도, 그리고 상황의 반전이라는 비극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또 상품들의 교환 아래 ‘감춰진 것’과 공장의 현실에서 ‘드러난 것’, 공장에서 일하는 육체에 쓰인 ‘지옥 서사’ 등이 『자본론』에 “독특한 내러티브 구조”를 부여한다. 마르크스의 극작법은 생산 및 삶의 재생산이라는 어두운 세계를 드러내면서 역사의 법칙을 파악한 이들에게 위계 없는 인류의 장래를 열어준다고 랑시에르는 말한다. 2장에서는 추리소설의 변천사를 짚어나가며, 그 변천 과정에서 어떻게 추리소설이 “평범한 등장인물들, 반복되는 시간, 중요하지 않은 사건들”을 배척하고자 했는지 살펴본다.
3부 〈실재의 기슭〉에서는 조지프 콘래드와 W. G. 제발트의 소설을 분석하면서 실재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의 관계를 다룬다. 특히 2장 〈문서들의 풍경〉에서는 제발트의 픽션에 주목해 새로운 픽션의 모델을 그린다. 제발트는 반복되는 여담을 통해 특정 순간, 특정 장소에서 일어났던, 일어나는, 일어났을 수도 있을, 일어날지도 모를 일들을 같은 순간, 다른 장소에서, 또는 다른 순간, 같은 장소에서 일어났던, 일어나는, 일어났을 수도 있을, 일어날지도 모를 일들과 수평적으로 연결함으로써 모든 다른 현실적, 상상적 시공간을 잠재적으로 포함하여 끝없이 팽창하는 ‘공존의 공간’을 직조하며 새로운 픽션을 창조해낸다.
4부 〈아무것도 아닌 것과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는 버지니아 울프, 윌리엄 포크너, 주앙 기마랑이스 호자의 소설을 분석하며 픽션의 정치가 어떻게 새로운 형상과 형식을 입고 변주되고, 확장되는지 살펴본다. 1장 〈임의의 순간〉에서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이 어떻게 새로운 공통 감각의 세계를 열어젖히는지 보여준다. 임의의 순간은 공존의 시공을 이루는 요소인 동시에, 그 자체로 ‘동요의 순간’이기도 하다. 사건의 시간과 의미의 세계 안에 살아가는 이들과, 이 시간과 세계 바깥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마주치는 순간이다. 울프는 바로 이 순간, 공통 감각 혹은 양식의 질서가 해체되는 순간을 그림으로써 다가올 공통의 삶, 새로운 공통 감각의 세계를 예고한다.
3장 〈말 없는 자의 말〉에서는 윌리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에 등장하는 백치 벤지가 어떻게 아무것도 아닌 것을 모든 것으로 뒤바꾸는지를 보여준다. 벤야민이 승리자들의 시간에 맞선 시간의 중지, 포개짐, 회귀, 격돌을 이야기했듯, 포크너의 픽션은 시간을 압축하고 팽창시키며 파편화하고 혼합함으로써 아무것도 아닌 것을 모든 것으로 승격시킨다. 4장 〈한없는 순간〉에서 다뤄지는 주앙 기마랑이스 호자의 픽션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들이 어떻게 고전적 픽션의 시간성을 넘어 한없는 순간을 만들어내는지 조명한다. 픽션의 정치적 주체는 삶과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순환 속에서 이야기로서의 삶을 읽어내고, 삶으로서의 이야기를 지어내는 아무나, 즉 누구나임을 주앙 기마랑이스 호자의 소설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