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슬픔을 다스리는, 목사 시인이 쓴
말이 아닌 마음속의 기도
김휼 시인은 120년을 넘긴 유서 깊은 교회(광주광역시 송정제일교회)에서 목회자로 사역하면서 시단에 정식 데뷔를 통해 창작활동을 펼쳐오고 있는 목사 시인이다. 그의 시편에는 시와 신앙이 접목되는 지점의 풍경과 우리네 삶을 넘나들며 궁구한 서정과 사유의 미학이 펼쳐지고 있다.
농사를 짓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9남매 중 일곱 번째 딸로 태어난 시인은 “헤아리는 마음으로 사물을 오래 들여다보면 신비 아닌 것이 없고 기도 아닌 것 없어요.”라고 말한다.
김휼 시인의 시집 『너의 밤으로 갈까』는 무너질 것만 같은 존재의 곁에 머물며 마음을 애쓰는 일은 쉽지 않다는 걸 시로서 보여준다. 그는 “귀가 깊어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일을 도맡”는 시인으로서, 바깥의 슬픔을 다독이다 자기 안의 슬픔을 앓게 되더라도 그 고통을 감내하려 안간힘을 쓰며 버틴다. 시인은 구체적 슬픔의 안쪽에서 손을 내밀어 소소한 일상을 재건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돕는 일이 가능하게 만든다. 김휼 시인은 이러한 자세와 역할이 시인의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목차
1부
식물의 시간 / 퇴행성 슬픔 / 에덴의 기울기 / 지평선, 가로는 선해요 / 사라지는 기분, 살아지는 기분 / 침묵의 문장들 / 돌의 기분 / 달을 위한 레퀴엠 / 알리움 알레고리 / 꽃게에게 해명의 시간을, / 花요일의 향기 / 침묵의 음표 / 초사흘엔 할단새가 떠올라
2부
숨 속에, 움 속에, 툼 / 마트료시카 / 이를테면, 페르소나 / 네트멜론 / 새라는 문장 / 몰염치 / 침착하게 불사르기 / 슈뢰딩거의 고양이 / 석류 / 늑대거미 / 달과 흰개미와 사막의 우물 / 선, / 설합(舌盒)
3부
화살나무와 붉은 과녁 / 부재 / 억새 / 불 꺼진 얼굴 / 머뭇거리는 침묵 / 물의 혼례 / 정령치의 봄 / 외딴 문장으로 남은 저녁 / 텅 빈 꽃자리에 그만한 게 있을까 / 혀끝에 피는 꽃 / 콩 고르기 / 지금은 떠나간 이름을 불러보는 시간 / 둥글어진 웃음 / 사람주나무에 이르는 동안
4부
너의 밤으로 갈까 / 나이트라인 / 대답을 들려주지 않아도 괜찮아 / 달을 품은 마을 / 나는 빈 잠을 굴리는 사람 / 달 정원 / 추억과 기억 사이 고르디우스 매듭 / 하염없는, 거리 / 간돌검 / 일요일엔 차를 즐겨요 / 글을 낳는 집 / 구두점을 찍고 싶은 계절 / 흘러내리는 결론을 붙들어 앉히고 / 회귀적 기울기
해설
구두점 없는 앓음의 시 | 이병국(문학평론가·시인)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곁이라는, 바깥의 깊은 고독을 아는 시인이 펼치는
시와 신앙이 맞닿은 지점의 서정과 사유
아무리 묻고 고민한다 해도 적절한 답을 구할 수는 없을 것임을 우리는 안다.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였을 때 분노하고 탄식하는 것은 마땅히 필요한 노릇이지만, 그것이 과도한 격정이 되지 않도록 슬픔을 다스리는 것도 필요하다. 분노와 탄식 이후,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있도록 단정함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시인이 수행해야 하는 바인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서 이는 세계의 아픔을 대속하는 시인의 역할과 유사한 맥락처럼 보인다. 아이를 잃을지도 모를 어미의 고통, 반대로 어미를 잃은 자식의 슬픔과 “지붕을 잃고 싶지 않아” 그저 “가두고 지키는 일에 생을 걸”어온(「설합」) 이들의 불안 등 이러저러한 아픔에 공감하고 그 곁에서 함께 앓는 존재로서 김휼 시인이 『너의 밤으로 갈까』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바가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 김휼 시인은 ‘나’를 “너의 밤으로” 데려가고자 한다. 이는 골목이 너와 내가 함께 공유하는 삶인 것처럼 ‘너의 밤’이 ‘나의 밤’과 다르지 않아 그것을 공유하고 나누고자 하는 행위로 이어진다. 물론 이때 주체는 타자와의 차이를 분명히 하여 타자를 주체에 귀속시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섣불리 타자와 주체를 동일시할 경우, 그것은 환대가 아닌 연민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존재 방식에 따라 끓는점이 다르다는 것”을, “허기질수록 뜨거워지는 이쪽의 방식과/ 점유할수록 서늘해지는 저쪽의 방식이 대치하고 있는 담장”을 인식하고 “길의 어깨에 기대어” 사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일요일엔 차를 즐겨요」). 김휼 시인이 시집 『너의 밤으로 갈까』의 여러 시편에서 재현한 바가 바로 이러한 사유에 기대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죽음의 이미지를 재현하면서 그로 인해 발생하는 구체적 슬픔의 안쪽을 반복하여 내보임으로써 ‘너의 밤’, 즉 타자의 고통을 함께 앓는 시인의 시적 윤리가 그것이다. 나아가 “떨쳐 내지 못한 어둠”을 어쩌지 못한 채 “구두점을 찍”어(「구두점을 찍고 싶은 계절」) 끝을 맺기보다는 함께 어둠과 밤을 앓음으로써 “또 다른 시작으로 가는 길의 끝에서// 흘러내리는 결론을 붙들어 앉히고// 구름을 벗어난 하늘 위의 하늘”(「흘러내리는 결론을 붙들어 앉히고」)을 바라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김휼 시인의 시는 구두점 없는 앓음을 지속해 나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안으로 닫아건 상처들이 한번에 왈칵 쏟아질 것도 같은”, 그래서 “범람하는 슬픔을 가두고 글썽이는 눈동자”(「달 정원」)로 “빈 잠을 굴리는”(「나는 빈 잠을 굴리는 사람」) 김휼 시인의 시가 아프게 읽히는 건 그 때문이리라. “부디, 가는 길이 아름다울 수 있길/ 뜻을 얻고 무사히 멈출 수 있길”(「구두점을 찍고 싶은 계절」) 바라는 마음을 시인의 곁에 덧대 본다.
시인의 말
너의 귀는 비좁기만 하고
누구의 귓속에서 난 살아날 수 있을까
좋은 말들로 네 귀는 만석이라서
비집고 들어갈 자리 없어서
난 너의 밤으로 갈까 해
지켜 내지 못한 것들로 인해
몇 날을 지새우던 그때와는 달리
지켜 내야 할 것이
몇 줄 남지 않은 지금
반딧불이 작은 빛을 받쳐 주고
내 부실한 구근을 숨길 수 있는
깊고 비옥한 너의 밤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