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감성의 근육을 키우는 시 즐기기
시를 읽는 행위는 꽤 매력적인 일이다. 그런데 쉽게 시작할 마음을 못 낸다. ‘시’가 어렵고 멀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길을 가다 높다란 건물 벽에 쓰여 있는 시를 보거나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붙어 있는 시 앞에서 가끔 멈추기도 한다. 그러다 어떤 단어 하나가 맴돌기도 하고,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기도 한다. 그렇게 시는 어느 날 불쑥 우리를 멈추게 한다.
‘시’가 마음에 슬쩍 들어온 경험이 있다면, 그런데도 시는 어려운 거야 하고 돌아선 경험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 보길 권한다. 시인이기도 하고 오랫동안 교사로 일한 저자는 편안한 목소리로 시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가 뭘까요?’ ‘어려운 시를 읽어야 할까요?’ 질문을 던지면서 이야기를 풀어 가는데 답을 주려는 게 아니다. 때로는 답을 얻을 수도 있지만 ‘그건 몰라도 됩니다’ 하고 말해 준다. 중요한 건 시에 우리를 맞추지 말고 우리한테 시를 맞추라고, 어려운 시는 던져 버리라고, 시 앞에서 쫄지 말고 독자의 권한을 마음껏 누리라고 이야기한다. 시 앞에서 긴장했던 마음이 어느덧 무장 해제된다. 나도 한번 읽어 볼까, 하는 마음이 슬며시 일어나게 만든다.
봄날, 시 한 편을 만날 수 있는 여유로 이 책을 들 수 있기를. 분명 시를 만나는 일은 꽤 멋진 일이다.
목차
책을 내며 005
1 시와 시적인 것 010
2 시를 꼭 읽어야 할까? 019
3 어떤 시를 읽어야 할까? 029
4 공감하는 시 읽기 046
5 질문으로 이어지는 시 읽기 058
6 은유의 힘 발견하기 071
7 내 마음대로 시 읽기 082
8 시인의 말에 귀 기울이기 100
9 깊고 넓게 읽기 113
10 나쁜 시 읽기 124
11 시 나누며 즐기기 150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왜 시를 즐기지 못할까?
‘시’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어렵다’는 생각이 따라온다. 길지도 않아서 만만하게 읽을 만도 한데, 왜 그럴까? 학교에 다니는 내내 교과서에서 시를 배우기도 했는데 말이다. 안타깝게도 초등학교 때는 운율을 잘 맞춘 시를 노래하듯 읽으며 배웠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너무 어려운 시들을 배웠다. 한시와 고전 시부터 해서 좋은 시라고 인정받은 시들을 밑줄 그어 가며 그 뜻을 해석해야 했다. 나하고는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쓴 시들을 성적 때문에 읽을 수밖에 없었던 게 시와 담쌓게 만든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대부분 우리는 시 앞에 주눅 들어 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그렇다면 딱히 좋지도 않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시를 굳이 읽어야 할까? 물론 읽지 않아도 된다. “누구나 반드시 시를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것도 폭력이 될 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데도 인류가 살아온 오랜 시간 동안 시는 존재해 왔다.
우리를 멈춰 세우는 ‘시’
인류와 함께 오랜 세월 살아온 시, 도대체 ‘시’가 뭘까?
‘시는 어렵다’는 생각을 잠시만 지워 보자.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잠깐이라도 어떤 ‘글자’ 앞에서 멈춰 선 경험이 있지 않을까? 시내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건물 외벽 광고판 앞에서, 지하철 스크린도어 앞에 붙어 있는 시 앞에서,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누군가의 말을 듣다가, 아이가 써 놓은 낙서를 보다가 잠깐 멈춤. ‘시’라고 특정 지어 말하지 않아도 우리를 멈추게 하는 ‘말’들이 있다.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세상에서 나를, 우리를 멈추게 한다는 건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시’가 그러하다. 저자는 “시는 우리를 떠밀지 않고 멈춰 세운다”고 말한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시를 어려워하면서도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
시에서 만나는 아름다움과 위로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기분이 좋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그득하게 채워지기도 한다. 아름다운 것을 즐길 줄 아는 것도 인간이 가진 능력이다. 물론 사람마다 생각하는 아름다움이 다를 텐데, 시에서 만나는 아름다움이란 일단 ‘말’이 주는 아름다움이지 않을까?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책에 나오는 정지용 시인의 〈유리창 1〉의 한 부분이다. ‘물먹은 별’과 ‘외롭고도 황홀한 심사’라니, 말을 잃게 만든다. ‘물먹은 별’이라는 말을 잠깐 품어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자리가 달라질 것이다. 우리가 예술작품을 보거나 들으면서 얻게 되는 감성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이다. 분명 그것을 경험하기 전과 경험하고 난 뒤의 내 상태가 달라진 걸 한번쯤은 느꼈을 것이다. 좋은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설 때를 떠올려 보면 알 것이다. 어쩌면 시 한 편을 읽는 짧은 시간이 하루 종일 일하느라 지친 나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내 편이 되어 줄 시를 만날 수도 있다.
신경림 시인은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파장〉고 말을 걸어 주고, 백석 시인은 “맑고 가난한 친구가 하나 있어서/ 내가 이렇게 추운 거리를 지나온 걸/ 얼마나 기뻐하며 락단하고/ 그즈런히 손깍지베개 하고 누어서/ 이 못된 놈의 세상을 크게 크게 욕할 것이다” 〈가무래기의 낙〉며 여기저기서 치여 낙담하고 있는 나와 함께 호탕하게 소리 내 주고 있다. 지금 내 마음에 들어오는, 딱 내 마음 같은 시를 만난다는 건 반가운 친구를 만난 일 못지않다.
교과서에서 배운 시인들의 시도 저자와 함께 새롭게 발견해 내는 즐거움은 덤이다.
《시를 즐기는 법》으로 시 만나기
책에 나와 있는 시인들과 작품, 안내해 놓은 책 들을 검색해 보는 것으로 시작해 보자. 시를 검색해서 읽다가 마음에 들어오는 시인이 있으면 도서관에서 빌려 볼 수도 있고, 한 권쯤 살 수도 있고, 그렇게 시를 만날 수 있다. 읽히지 않고 어려운 시를 만난다면 과감하게 무시해도 된다. 시를 공부해야 하는 비평가도 아닌데, 공부하듯이 읽을 필요 없다.
저자는 시에 우리를 맞추지 말고 우리한테 시를 맞추라고, 어려운 시는 과감히 던져 버리라고, 시 앞에서 쫄지 말고 독자의 권한을 마음껏 누리라고 이야기한다. 어려운 시 아니더라도 읽을 시는 세상에 차고 넘쳤다고 말한다. 한 편, 한 편 읽다 보면 ‘시’가 안내하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시 앞에서 멈춘 시간이 “희미하지만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보이기도 하고, 지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 잠시 쉬었다 가는 쉼터”가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