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지옥
인간이 고심하고 골라 만든 ‘공든 탑’
모든 동물이 짓밟혔지만 인간만이 영광스러운 그곳, 동물 지옥
불멸의 고전, 단테의 『신곡』을 오마주 한 현대판 지옥
전 구조 담당자가 전하는 동물 픽션
동물의, 동물에 의한, 동물을 위한 이야기
지옥은 분명히 있다. 신이 있든 없든 말이다. 지옥은 무엇인가.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고,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는 곳(기독교 신약성서 마가복음 9장 47~48절)인가. 인간 지옥이 세상 너머에 저렇게 존재한다면 동물 지옥은 이 세상에 있다. 사실, 동물들의 지옥 역시 유구했다. 인류가 태어난 이래 동물이 인간 손에 죽지 않았던 적이 없었으니까. 물론 동물도 인간을 해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지옥은 인간의 손에 의해 공고해졌고 오늘에 이르렀다.
동물 지옥은 계속 이어지는 걸까. 말없고 힘없는 동물들을 위해 한 인간이 용기를 냈다. 동물 보호 단체에서 활동하며 학대받는 동물들의 삶의 현장을 목격하고, 한국에서 사는 동물들의 현실을 연재했던 전 동물 구조 담당자가 픽션으로 독자들을 ‘현대판 동물 지옥’으로 안내한다. 고전 중의 고전 단테의 『신곡』을 오마주hommage, 동물들의 지옥으로 재구성해 이 지옥은 신도 동물도 아닌 인간이 만든 지옥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6옥으로 구성된 지옥, 32개로 세분화된 각각의 에피소드를 통해 각 동물이 겪었던 지옥을 주인공 ‘나’와 함께 건너가 보자. 동물의 지옥은 동물만의 것이 아니다. 동물의 삶이 지옥이라면 생태계, 더 나아가 지구에게도 악영향이 갈 터. 이 지옥은 앞으로 인간에게 닥칠 ‘예견된 지옥’을 예습하는 과정일지 모른다. 인간 앞에 쌓여있는 숙제는 기후위기, 전쟁, 생명 경시 등 한두 개가 아니니까.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동물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모두가 각자의 천국(그에 준하는 어딘가)으로 향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목차
동물신곡 세계관 상상도
들어가는 문 - 지옥의 문 앞에서
1옥
입구 01 무지개다리를 건너다
입구 02 고양이 행성의 한때
입구 03 우연히 알게 된 세계
-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개
돼지 삼형제의 복수
닭의 바벨탑
탈출한 광어와 껍데기 없는 킹 크랩
두꺼비와 맹꽁이의 바둑 게임
석상이 된 돌고래의 변신
2옥
입구
-
개를 뜯어먹는 괴물
세상에서 가장 빠른 말
어느 저수지의 붕어 이야기
고래법정에서 생긴 일
엄마곰은 날씬해 아빠곰도 날씬해
고슴도치가 된 상어
3옥
입구
-
두 발로 걷는 개
싸우기 싫은 싸움소
코가 없는 코끼리
못생긴 호랑이의 슬픔
가재 선생과 낙지 명인
병아리 롤러코스터
4옥
입구
-
목이 긴 개 이야기
부들부들 발바닥의 망치
도마뱀 악어와 머리 둘 달린 거북이
멧돼지 기차를 타고
반딧불이 원정대
5옥
입구
-
투명 라쿤과 대머리 앵무새
산천어가 초대받은 마을
의자가 등에 붙어버린 거북이
어느 북극곰의 북극 여행
6옥
입구
-
비둘기 집사와 수상한 박사
어둑서니 여우의 탐색
아무리 해도 얻을 수 없는 것들
수렁에 빠진 까치, 집 짓는 우산 날개
변신 고양이와 아주 오래된 이야기
나가는 문 - 새로운 세계에 관한 기록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들어가는 문 1. 한 인간이 동물들의 지옥에 들어섰다
6개의 고통으로 분류되고 32개로 세분화된 지옥
이 이야기는 죽지 않은 자가 죽은 자의 공간에 발을 들이면서 벌어진 일을 기록한 것이다.
평범한 인간으로 고양이를 키웠던 주인공 ‘나’는 반려 고양이 ‘반도’를 잃게 된다. 반도와 함께한 시간은 너무 짧았고, 이별하는 시간은 너무 길 뿐이었다. 동물 장례식장에서 나는 우연찮게 무지개다리를 건너 고양이 행성에서 반도를 만나게 된다. 감격적인 순간은 잠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길을 걸어야 했는데 그것은 모든 생물의 영혼이 머무는 동굴로 가는 것(고양이는 고양이 영혼이 가는 길로 지구로 갈 수 있다고 한다). 그 동굴은 수많은 동물들이 지구에서 겪었던 고통을 잊기 위해 오랜 시간을 견디는 곳이며 그 끝이 지구와 닿아있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반도와 함께 긴 여정을 결정했고 동굴 입구로 들어섰다. 순간, 동굴 안쪽에서는 기기괴괴한 소리가 들려왔고 동물들의 잔상이 안개처럼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동물 지옥으로, 한 발자국 내디뎠다. 6개의 고통으로 분류되고(신체의 자유를 박탈받은 이들의 지옥, 신체의 고통을 받은 이들의 지옥, 인간의 유희를 목적으로 왜곡된 삶을 살은 이들의 지옥, 인간에게 버려진 채 죽은 이들의 지옥, 서식지에서 쫓겨나 놀잇감으로 전락한 이들의 지옥, 학대로 끔찍한 고통과 죽음을 맞은 이들의 지옥) 32개로 세분화된 지옥에서 나는 각각의 크고 작은 다양한 종의 동물들에게서 저마다의 사연을 듣게 된다. 나는 이 지옥을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까? 어쩌면, 듣고 싶지 않았던 동물들의 이야기를 듣고 온전히 그들을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동물을 위해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옥 문 2. 인간 천국, 동물 지옥
동물 지옥이 생긴 이유는 단 하나, ‘나약한 인간’을 위해서
“지옥에 들어선 순간부터 모든 순간이 흉흉할 거야.
자극적이고 끔찍할 거야. 막을 수도 없앨 수도 없을 거야.
이곳은 아주 오래된 지옥이거든.” (드라마 대사 패러디)
- 〈더 글로리〉, 에피소드 3, 연출 안길호, 극본 김은숙, 2022년 12월 방영, 넷플릭스
지옥에 떨어진 기분을 아는가. 지옥은 다양한 표정으로 때와 장소와 순서를 가리지 않고 우리를 찾아온다. 자유는커녕 기본적인 욕구 하나도 채우지 못한다. 순간순간 보이지 않는 공포감 속에서 먹고, 자고, 쉬고, 배설하는 행위를 한다. 그 행위가 온전할 리 없다. 일상 속에서 과거의 트라우마가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되고 몸이 절로 반응한다. 살아도 마음대로 살지 못하는 삶. 오늘을 살지 못하는 삶. 육신이 잘리거나 찢겨져 방치된 삶. 이유도 모른 채 죽었거나 죽음에 근접한 삶을 사는 삶. 빨리 죽길 원하는 그런 삶. 많은 동물은 오늘도, 지금 이 순간에도 숨 쉬듯 지옥을 겪고 있다. 폐업한 강아지 공장에 남겨진 개들의 삶은 어떨까? 탈출을 위해 발톱이 빠져라 문을 긁고 또 긁고, 죽은 개의 살점을 뜯어먹고 죽어가는 삶은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반대로 인간에게 보호받는 삶은 나을까? 인간의 욕심을 위해 실행하는 동물 근친교배, 감옥 같은 철창 안에서 본능도 의지도 잃어버린 동물이 더 이상 그 동물이 아니게 된 쇼윈도 같은 삶을 사는 것이 나을까? 그렇다면 야생에서 사는 삶이 답일까? 야생동물도 예외는 없다. 인간과 재산에 해가 된다는 추측 아래 빠르게 이어지는 마취, 총살을 피할 방법은 많지 않다. 야생의 삶이 더 잔인하다. 인간의 몸에 좋다고 소문난 식재료로, 인간의 부를 상징하는 옷으로, 오직 인간의 재미(라고 말하고, 사실상 폭력인) 대상이 되어야만 하니까. 동물 지옥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했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 이런 일은 예전보다 덜하다 말하고 싶을 수 있겠다(지옥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인정하는 건 꽤나 힘든 일이니까). 대답은, 글쎄올시다. 앞서 말했듯 지옥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각종 동물의 내장과 고기 음식을 파는 식당은 기본, 동물원과 박물관, 체험형 카페는 지구 어디서나 쉽게 발견된다. 더 외면하고 싶은 사실은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장소에도 지옥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동물이 산 채로 실험을 당하고 이유 없이 총에 맞고 큰돈을 위해 가죽이 벗겨지고 온몸이 찢겨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왜 동물 지옥이 생겼냐고 묻는다면, 단 하나의 위대한 목적을 위해서다. 인간을 위해서. 오직 인간의 즐거움과 편안함, 건강을 위해서. 인간의 돈벌이와 탐욕을 위해서. 인간의 천국을 위해서 동물 지옥은 탄생하고야 만 것이다.
나가는 문 3. 지옥 또한 가슴으로 느끼는 것
고양이 메테의 이야기, 그리고 세계관을 담은 일러스트 작품
지옥의 존재보다 더 잔인한 일이 있다면, 지옥의 모습을 정확하게 알게 되는 일일 테다. 동물들이 겪은 지옥이 어떠했고 그 고통은 얼마나 컸는지, 지독할 정도로 개별적이고 고루고루 다양한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되새김질하는 일 자체만으로도 지옥을 경험한 셈이 되니까. 몇 번이고 생생한 지옥을 본 작가는 말한다.
눈을 감고 타인의 죽음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면,
부러진 내 손톱이 내 심장을 찔러 나 역시 똑같이 되리라는 것을. _p9 ‘지옥의 문 앞에서’ 중에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동물이 어떻게 고통을 받고 어떻게 죽든 나와 무슨 상관인가.”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는 주고받는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금 우리 옆에 자리한 반려동물은 인간의 보호 속에서 자란다. 반려동물은 인간에게 행복을 주고 생명 존중에 대해 알려준다. 야생의 세계에서는 서로를 쫓고 피하고, 잡아먹고 잡아먹히며 먹이사슬 관계가 이어진다.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는 서로가 서로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거대한 ‘지구 세계관’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더더욱 이 지옥을 알아야 한다. 지구에 동물지옥이 있음을 알고, 인정하고, 무엇이 모두에게 좋은 일(적어도 ‘덜 지옥’)일지 생각하고 무거운 마음이 되는 것. 거기서부터 지옥의 악순환은 끊어진다. 동물들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등장하는 ‘메테의 이야기’는 각 동물의 처지와 한국에 살고 있는 동물들이 겪는 현실을 짚어준다. 또한 동물들을 위해 우리가 마땅히 생각해야 할 부분도 일러준다. 지옥을 인간과 함께 건너가는 동행자의 심정으로, 동물의 입장을 대변하는 마음으로, 인간에게 사랑받은 만큼 인간에게 마음을 쓰는 고양이 특유의 다정함으로 인간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친절히 알려준다. 그리고 백문이 불여일견, 동물지옥의 압도적인 무게감을 그려낸 일러스트가 함께한다. 동물지옥의 세계관과 각 옥을 비유적으로 드러내는 일러스트는 지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더해준다. 프랑스 작가 귀스타브 도레Gustave Dore(1832~1883년)의 신곡 작품을 착안, 동물지옥을 생생히 구현했다. 일러스트에서 느껴지는 판타지와 은유성을 통해 동물지옥이 현실적으로 그리고 입체적으로 다가올 것이다.